[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북아일랜드의 유혈 사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알버트 레이놀즈 전 아일랜드 총리가 알츠하이머 병과의 오랜 투병 끝에 21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81세.
그의 장남 필립은 부친이 최근 24시간 돌봄을 받고 있던 더블린의 자택에서 이날 새벽 3시에 운명했다고 밝혔고 아일랜드 정부는 25일로 예정된 국장이 끝날 때까지 전국에 국기를 반기(半旗)로 게양하도록 선포했다.
로스코몬카운티의 농촌에서 부유한 사업가로 살았던 레이놀즈는 지역의 많은 댄스 홀들과 애완용 사료 회사로 큰 돈을 번 뒤 1977년 의회에 진출했으며 1992~1994년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개 정당의 연립정부를 세워 이끌었다.
재임 기간 중 이웃한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레이놀즈는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와 나란히 다우닝가 선언(1993)을 발표해 영국 신교도가 많이 사는 북아일랜드의 평화 유지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특히 그는 불법 테러 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군(IRA)를 압박해 1994년 성공적으로 휴전협정을 이루었다.
그는 이 일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당시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IRA와 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서라면 일부 규칙들에는 융통성을 허락할 때가 지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화를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일랜드 연정의 파트너였던 좌파 노동당의 정치인들이 그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항의하면서 연정을 탈퇴하는 바람에 그는 기습적으로 사임에 내몰려야 했다.
25년 간 3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북아일랜드 사태의 해결에서 나타난 것처럼 레이놀즈는 배짱이 두둑하고 외줄타기를 서슴지 않는 사업가이자 정치가였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아일랜드계 미국인 지도자들과도 굳건한 관계를 수립해서 IRA와 연계된 신페인당의 활성화를 원하는 그들과 북아일랜드 평화를 위해 협력했다.
또 신페인당의 당수 게리 애담스와의 협의는 고사하고 만나는 것조차 꺼리던, 회의적인 메이저 영국 총리를 설득해 양측을 만나게 해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등, 양쪽 모두에게 평화의 중개자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