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정호 기자]“교황님 사랑합니다. 비바 파파!!”
16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흰색 퍼레이드 차량이 서울시청 앞에 들어서자 수십만 명의 신도와 일반 시민들이 환호성으로 일제히 반겼다.
교황은 퍼레이드카에 오른 후 화답하듯 특유의 인자함이 담긴 미소를 보이며 손을 뻗어 힘껏 흔들었다.
경찰과 교황방한위원회는 군중이 운집한 장소에서 교황의 움직임에 따라 한꺼번에 발걸음을 옮기다가 압사 등 예기치 못할 사고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연신 내보냈다. 이날 모여든 인파는 경찰 추산 17만5000여명이다. 광화문광장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에 초대된 17만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포함된 숫자다. 당초 경찰이 추산했던 인원에 훨씬 못 미쳤으나 행사 자체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교황은 퍼레이드 도중 잠시 차를 멈춘 뒤 경호원의 손에 안겨 자신에게 다가온 아이들의 머리에 살며시 입을 맞추기도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우는 아이를 보고는 환하게 웃어보이기도 했다.
교황의 몸짓 하나하나가 화면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시민들은 크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미사포를 쓴 채 지긋이 교황을 바라보는 신도들도 있었다.
교황은 한국천주교의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에서 서울시청, 청계광장을 지나 경복궁 방향으로 이동했다. 차량은 시복식 제단 앞을 지나 다시 세종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이순신 동상 앞에 다다르자 교황이 탄 차량이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교황은 단원고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이날로 34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김씨는 교황에게 서신이 담긴 노란쪽지를 전달하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김씨에게 받은 쪽지를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은 뒤 그를 안아 위로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박병덕(35)씨는 “이런 순간이 오길 바랬다. 광화문은 우리 정신이 살아있는 장소로, 이곳에서 교황과 유민 아버지가 만난 것은 많은 걸 의미한다. 교황은 ‘젊은이여 일어나라. 거리로 나가라. 너희 자신을 위해 외쳐라’라고 했다. 오늘 이 만남이 쇼에 그칠 게 아니라 성찰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광화문 앞 유족 해산 논의는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김상복(60·여·세례명 실비아)씨는“교황을 보니까 좋다. 너무 좋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곁에 있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A씨는 “벅차다”면서 울먹거렸다.
경기도 양주 나루터 공동체에서 왔다는 심준완(45·세례명 유스티노)씨는 “현존하는 교황을 눈으로 보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감동 그 자체다”라면서 “분단의 아픔과 최근 일어난 세월호의 슬픔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황께서 국가적으로 잘 해보자는 메시지를 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뇌성마비 앓고 있는 김성오(35·세례명 다니엘)씨는 “참석 신청했으나 추첨되지 않아 경호벽 밖 카페에서 화면으로 시복식을 지켜봤다”면서“바깥 날씨가 매우 더워보였는데, (장애를 가진 나에게) 편하게 보라고 하느님께서 일부러 추첨 안해주신 것 같다(웃음)”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오전 9시38분께 광장에 도착했다.
교황은 전날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학생을 면담하고, 유족이 선물한 노란리본을 왼쪽 가슴에 단 채 집전했다. 2시간여에 걸친 미사는 순조롭게 치뤄졌다.
미사가 끝난 직후 “교황님과 함께 미사할 수 있어 기쁘죠? 행복하시죠?”라는 사회자의 말에 참석자들 “네”라고 답하고선 힘찬 박수를 쳤다.
행사장 내 정리정돈은 성당·교구별로 일사분란하게 이뤄졌다. 아쉬움이 남은 일부 신도들은 제단 앞에 서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거나 기도문을 외웠다.
제단에 놓여있던 꽃을 들고 스크린에 뜬 복자 초상화 배경으로 사진 찍던 이슬비(22·여)씨는 “시복 미사에서는 한국에 관한 직접적 발언은 없었지만 교황이 한국을 찾은 것만으로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가 되라는 교황의 뜻을 한국 교회가 앞으로 잘 실천해나가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다시 없을 귀한 기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온 임모(65·여·세례명 필로미나)씨는 “(경호벽) 밖에 있다가 (행사가) 끝나자마다 제대로 보고 싶어서 들어왔다”면서 “교황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데, 미처 등록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교황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뜻 깊었다”고 언급했다.
신앙이 없다는 익명의 한 중년 남성은 “우리나라 종교를 불신하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분 같다. 다 내려놓은 모습이 보기 좋아서 왔다”고 전했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한데 몰리면서 퇴장 시간이 다소 지체됐고, 광화문역 진입이 한때 통제됐다. 경찰은 경복궁역과 종각역 등 인근 역으로 이동할 것을 안내했다.
광화문 일대 교통 통제는 오후 5시께서야 완전 해제된다. 다만 방호벽 등 시설물이 철거되는 시간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