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기철 기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한항공이 달라진 모습으로 여름 배구 정상에 섰다. 대한항공 우승 뒤에는 선착순과 심리치료가 자리하고 있었다. 선착순으로 몸을 단련했고, 심리치료로 마음을 달랬다.
김종민(40) 감독이 이끈 대한항공은 27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시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14안산·우리카드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우리카드를 3-0(25-22 25-19 25-22)으로 완파하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2007년과 2011년 정상을 밟았던 대한항공은 3년 만에 우승을 추가하며 컵대회 최다우승팀인 현대캐피탈(4회·2006·2008·2010·2013년)의 뒤를 바짝 쫓았다.
LIG손해보험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3으로 무너질 때만 해도 대한항공이 오래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감독 스스로도 팀 전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이번 컵대회를 앞두고 벌인 연습 경기에서 단 한 차례의 승리도 맛 보지 못한 것이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최하위 팀인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도 5세트 모두를 내줬다. 심지어 대학팀을 불러 연습 경기를 벌였던 때에도 3세트 동안 한 세트만을 따내고 나머지 두 세트에서는 고개 숙였다.
연습경기에서 한 번 질 때마다 김종민 감독은 선수들에게 가까운 신갈 저수지 '선착순' 벌을 내렸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반복된 선착순에 선수들은 혀를 내둘렀고, 나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뎠다.
컵대회 최우수선수(MVP) 자격으로 인터뷰실을 찾은 신영수에게 이 같은 내용을 묻자 얼굴색이 바뀔 정도였다. 신영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어디서 그 내용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힘들었다"면서 "경기에서도 지고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에서 벌로써 받는 선착순이라 더욱 힘들었다. 눈치껏 하려고 해도 중간중간 감시를 해 요령을 피울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유독 혹독했던 체력 훈련에 대해서 그는 "(체력훈련은) 할 때마다 사람을 극한으로 몰았을 정도로 매우 힘들었다. 감독님이 중간에 한 번씩은 강도를 조절 해줄 것 같았는데 계속 몰아붙여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그 때 우리끼리 '한 번 믿고 따라가보자, 힘들어도 불만갖지 말고 시키는대로 따라가보자 했는데 그것들이 모두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이 달라진 것은 비단 강한 체력훈련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 얇아진 선수층을 이끌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대한항공은 김종민 감독의 추천으로 선수와 감독 모두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선수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김종민 감독은 매주 수요일 심리치료사를 통해 상담을 받고 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부분을 털어놓고 위안을 받는다. 김 감독은 치료사를 통해 선수들의 고민을 전해듣고 이해하고 있다.
LIG손해보험전에서 지면서 심리치료 효과에 의문이 들었을 때도 김종민 감독은 "단기간에 효과를 볼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통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변치 않은 믿음을 드러냈다.
이어진 경기에서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대한항공은 조별리그 2차전부터 준결승까지 3경기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끈끈한 플레이로 물고 늘어지며 상대를 괴롭혔다. 특히 삼성화재와의 준결승에서는 위축되지 않고 한 세트씩을 주고 받으며 마지막에 웃었다.
김 감독은 이날 우승 뒤 "LIG손해보험과의 첫 게임에서 지고 쉽게 무너질 것 같았는데 우승까지 했다. 심리 치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신영수는 심리치료 효과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선수들 모두가 그 시간을 좋아한다. 심리치료라고 해서 어둡고 딱딱한 것은 아니고 재밌고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한다. 일대일로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상황극을 가정해 어떻게 하면 위축되지 않고 풀어나갈 수 있나 돌이켜보기도 한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