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정호 기자]경찰이 숨진 재력가 송모(67)씨의 이른바 '뇌물장부'를 전체를 복사해 보관하고도 상부에는 이를 폐기했다고 거짓보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서에서 검찰에 장부 사본을 제출할 때까지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어 경찰 수사지휘체계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6일“전날 경찰이 남부지검에 제출한 숨진 송씨의 금전출납기록부 사본은 지난 3월4일 송씨 살인사건 발생 당시 강서경찰서 관계자가 현장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유류품인 장부를 발견하곤 이를 복사해서 보관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재력가 송씨 피살사건을 담당했던 강서경찰서는 당시 김형식(44) 서울시의원이 살인교사 피의자로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장부를 사본화해 이를 서류보관함에 방치해뒀다.
서울청 관계자는 “사건 초기 강서서 강력1팀에서 사건을 담당하다 관내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서 강력2팀으로 사건이 인계된 후 최초 사본화한 것은 캐비넷에 보관해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장부외에도 경찰은 지난 5월22일 중국으로 도피했던 살인사건 피의자 팽모(44)씨를 검거한 후 김 의원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송씨의 가족에게 장부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지난달 19일 송씨 가족으로부터 장부를 임의 제출받아 사본화했으며, 이 사본은 현재까지도 강서경찰서에 보관 중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장부를 2부씩이나 사본화해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사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그러다 장부상에 기록된 내용을 두고 검찰과 경찰간 진실공방이 벌어지자 먼저 복사한 사본 1부를 15일 검찰에 제출했다.
심지어 강서경찰서는 장부를 2부씩이나 사본화해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에는 장부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2장짜리 메모형식의 범죄첩보로만 보고했다.
일선서에서는 최초 사본화한 장부의 실체에 대해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일절 보고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본화한 자료 역시 첩보보고 후 파기했다고 허위보고 했다
일선서의 허위누락보고로 인해 이번 사건 수사지휘선상의 최고 위치에 있는 강신명 서울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은 “장부 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숨진 송씨의 장부는 이번 피살사건이 정관계 로비 수사로 확대되는데 결정적 증거물임에도 경찰이 장부 사본의 존재여부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사지휘계통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서의 한 경찰 관계자는“보통 범죄 첩보보고를 먼저하고 본격적인 수사지시가 떨어졌을 때 확보한 자료들을 상부에 보고 한다”면서도“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볼 때 (정관계 로비정황이 담긴 장부의)사본에 대한 존재유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청 관계자는“일선서에서는 사본상에 정치인, 공무원 등의 금전거래 부분 등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정리해 보고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경찰이 임의제출 받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사본을 제출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허위보고를 한 강서경찰서 관계자에 대한 감찰 여부를 추후 검토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