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소식에 전 국민적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씨를 비롯한 일부 선원들의 ‘나부터 살고보자’ 식의 사고 당시 행적이 드러나 국민적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승객들에 대한 대피 조치는 취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 먼저 배에서 탈출하는 믿기 힘든 범죄를 저지른 것. 특히, 자신들은 탈출하고 있으면서도 거듭 ‘선내가 안전하니 선내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내 승객들이 탈출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물속으로 잠겨 버리는 초대형 참사를 빚게 했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이들의 행동에 사망-실종자 가족들 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잠을 설쳐가며 분을 삯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여객선 참사가 100% 인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있을 수 없는 대형 참사, 선장이 피해 키워
선장 이준석 씨는 지난 19일 오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뒤 광주지법 목포지원을 나오면서 조타실을 비운 사실을 인정했다. 사고 당시 항로를 지시하고 침실에 가 있었고,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지점이 맹골수도(孟骨水道·진도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해역)라는데 있다. 조류가 가장 거센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곳을 지나면서 선장이 어떻게 조타실을 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조차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사고가 난 이후 조타실에 복귀해 승객 대피에 조치 과정에서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계속 선내에 있으라는 방송만 했다는 것은 승객들을 사실상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월호의 최초 침몰 신고가 오전 8시52분에 이뤄지고 한 시간여 뒤인 9시50분에 60도 가량 기울고 10시29분에 대부분 침몰한 점을 감안하면, 승객들을 선실 밖으로 대피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최초로 승객이 구조된 시간은 오전 9시30분으로 서해지방해양경찰청 헬기였으며, 이후 9시45분에 해경 함정 1척, 오전 10시3분에 전남도 행정선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실종자 대다수가 선실 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정황상 조금만 일찍 밖으로 대피시켰다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닷속으로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 학생들은 선내에서 꼼짝하지 않고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 시간 선장 이 씨는 구조선을 옮겨 탄 것이다.
선장 이씨의 지시로 조타실을 지휘한 3등 항해사 박 씨의 미숙한 위기대응 능력도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조타수 조모(55)씨는 “평소처럼 (방향타를)돌렸는데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방향타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선박 자체의 고장이나 결함이 있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무책임하고 미숙한 대응으로 피해 규모를 키운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이타닉 침몰 이후 최악의 수치, 전 세계적 공분
선장 이 씨의 ‘나홀로 탈출’은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일 A섹션 6면에 ‘수백 명 승객들을 배에 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의 자랑스런 전통을 저버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런 반면, 학생들을 먼저 구하다 숨진 승무원 고 박지영씨에 대해서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소개하며 선장 이 씨와 비교해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선장이 배와 운명을 같이 한 이후 이 같은 행동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지만 최근 2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선장이 승객들을 침몰선에 놓아두고 가장 먼저 달아난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양 전문가들은 세월호 선장의 행동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며 법적으로도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며 “이 때문에 이 선장은 한국의 블로거들에게 ‘세월호의 악’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무사히 육지에 내렸지만 감옥행이 되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타이타닉 사건 이후인 1914년 채택된 국제해양조약은 선장이 배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것을 명기하고 있다. 승객들은 경보 발령 30분 안에 대피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선장 이 씨는 이 같은 규정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잠수함 선장을 역임한 예비역 해군 소장 존 B. 패지트 3세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다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 선장(이준석 선장)의 행동이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선장도 “447명의 승객들을 놔두고 탈출한 그의 행위는 한마디로 ‘불명예’다. 2012년 좌초한 이탈리아 코스타 콘코르디아호 선장에 준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세월호에 모두 선장 이 씨와 같은 불명예스런 인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승객이었던 박호진(16)군은 6살 여아가 기울어진 배 한쪽에서 몸이 젖은 채 혼자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를 찾으러 배 안으로 들어가 오빠를 기다리던 아이를 박군이 안아 다른 구조승객들에게 전해 구조선에 태울 수 있었다. 박군은 나중에 구조선에 탑승했다.
구조된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승무원 박지영(22)씨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도록 돕고 빨리 구조선이 있는 바다로 뛰어들라고 재촉했다. 구명조끼도 없는 박지영씨에게 학생들이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지만 그녀는 “너희들이 모두 구조된 후에 나갈 거야. 승무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중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세월호 승무원 24명 중 선박직 직원 15명은 모두 구조됐으며 서비스직 9명은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구조자 명단을 보면 선장 이준석 씨를 비롯해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 등이 포함돼 있다. 다만 사무장과 조리수 등 고객 서비스를 맡고 있는 직원 9명은 모두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지만 먼저 침몰하는 배를 떠났으며,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응급처치와 구명정 작동, 3항사는 선장을 보좌해 기록·통신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반면 다른 이들의 탈출을 도우려다 사망하거나 실종 중인 승무원은 승객 서비스와 관련 있는 사무장·사무원들이었다. 합동수사본부는 이들 선원을 조사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구조된 선원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선원법 위반 여부에 따라 사법처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사고 난 배에서 선원이 승객보다 먼저 탈출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18일 김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