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 "봄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했어요. 자연을 중심으로 꽃과 새 같은 서정적인 부분을 생각하려 했죠. 전작들은 생각지 말고,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여기면 좋겠어요. 좀 더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들었으면 하네요."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40,사진)은 라틴 성향의 1집 '우리 젊은 날'(2004), 펑키색이 두드러진 2집 '왓 이스 쿨 체인지'(What is Cool Chan,ge·2006)를 통해 재즈 뮤지션의 성격을 드러내왔다.
7년4개월 만인 24일 발표한 정규 3집 '댄싱 버드(Dancing Bird) 역시 그러한 성향의 연장선상이다. 왈츠, 발라드, 스윙, 라틴, 펑크 등 그의 다양한 음악적 관심이 담겼다.
다만 가을과 겨울에 발표된 전작들과 달리 봄이라는 시기를 반영한듯 전 앨범보다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특히 여러 곡에 사용된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과 목관악기가 풍요로움을 전한다. 비브라폰의 맑고 부드러운 울림은 봄내음을 물씬 풍긴다.
전제덕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 '반쥴'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2집이 센 측면이 있어 흥행이 좋지 않았죠. 이후 스페셜 음반을 다른 식으로 발매하기도 했는데 생각이 많았어요"라고 밝혔다.
"서정적인 음악을 할 것이냐, 내가 추구하는 펑키를 할 것이냐 고민을 했죠. 그러다 1집처럼 멜로디를 강조하고 아기자기한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하면 다가갈 수 있을 지 고민했어요."
전제덕이 작곡한 타이틀곡 '봄의 왈츠'는 화려하면서도 기교적인 하모니카 선율이 돋보이는 왈츠다. 화려한 스트링 사운드가 하모니카와 멋지게 어우러진 삼바 '댄싱 버드', 우수에 찬 볼레로 리듬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각각 피처링한 듀엣곡 '항해'와 '멀리 있어도'는 두 뮤지션만의 개성이 전제덕을 만나 빛을 발한다. '멀리 있어도'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정원영이 작곡했다.
또 하모니카의 독특한 벤딩 주법(소리를 들어올리는 주법)이 인상적인 '돌이킬 수 없는'은 슬프면서도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소포니스트 손성제가 작곡했다. 기타리스트 정수욱이 작곡한 'St. 피터슨'은 재즈 색소폰의 전설 소니 롤린스의 곡 'St. 토머스'와 재즈 피아노의 거장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칼립소 리듬 위로 비밥 선율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앨범의 유일한 커버곡이자 마지막 곡인 '컴 백 애스 어 플라워(Come Back As A Flower)'는 스티비 원더의 곡이 원곡이다. 원더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덕과 공통점이다.
"원더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의 음악 하나하나에 매료됐어요. 언제가는 꼭 리메이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이슨트 쉬 러블리' 같은 유명한 곡보다 다른 분들이 부르지 않은 노래 중 예쁜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기준점이 된 노래예요. 꼭 하고 싶었던 노래이기도 하고요."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는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의 임팩트가 상당하다"고 여겼다.
이번 3집에서 2집과 가장 다른 지점은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의 60%만 쓰자"는 것이다. "소리를 예쁘게 내자고 마음 먹었죠. 사운드를 잡을 때 거친 것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어요. 차가운 소리는 최소한으로 하자는 거죠. 발라드 같은 경우는 더 신경을 썼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하듯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은 그가 상상하는 꽃과 새, 봄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보지 않고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있어요. 눈으로 보는만큼 다 동원을 해서 표현을 할 수 있는 감각이요. 정원에 새가 날고, 봄이니 벚꽃이 한창 피어있는 모습. 잘라서 이야기하기 그렇지만 그런 감각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합니다. 눈이 아닌 다른 감각, 다른 세포로 저장하죠. 단편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드네요."
전제덕이 첫 솔로 앨범을 냈을 때 대중은 그처럼 원더나 레이 찰스, 호세 펠리치아노 등 시각장애 아티스트들을 떠올렸다.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을 전하는 뮤지션, 즉 '인간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
전제덕을 하모니카의 세계로 이끌어준 투츠 틸레망스가 그러했듯, 그러나 그는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새로운 음악 세상을 열었다는 평도 함께 받았다. 특히 세션 악기로만 여겨지던 하모니카로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솔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저의 자만의 될 수도 있는데 가수들 세션을 하다보니, 제 소리가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잘 나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 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했죠. 그래도 웬만해서는 기조를 지켜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많이 잘 지내고 있어요. 하하하."
반도네온, 비브라폰 등 하모니카처럼 주로 세션 악기로 치부되는 악기 연주자들에게 전제덕은 롤모델이다. "저는 어떻게 보면 기회라고 생각해요. 피아노와 기타, 드럼 등 리듬 악기 하는 분들은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오히려 경쟁이 심하죠. 반도네오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를 꾸준히 하다보면 오히려 길게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2004년 전제덕 1집이 나온 이후 하모니카가 새삼 조명되며 붐이 일기도 했다. "낙원상가에서 하모니카가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하하. 하모니카는 제가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죠. 다른 분에게는 피아노나 기타가 될 수 있고요. 제가 하모니카를 선정한 이유에 이 악기로 연주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열심히 하면 반응이 있든 없든 뭔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죠. 하모니카를 빼면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앞으로 환경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습니다."
1집부터 이번 앨범까지 프로듀싱을 맡은 정수욱씨는 "전제덕씨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데 그걸 한꺼번에 돌출하기보다 정리가 됐으면 했다"면서 "2집에서는 열정이 앞섰는데 3집은 욕심을 줄이려고 시도한 앨범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55)씨는 전제덕 3집에 대해 "음악이 싱그럽고 대중적으로 나왔다"면서 "재즈를 난해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팝 성향의 앨범"이라고 평했다. "일상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생활 사운드 트랙'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제덕은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 4월1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