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창진기자] 20여년 동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푸른 소나무'였던 이규혁(36·서울시청)은 마지막 레이스에서도 결승선까지 최선을 다했다.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는 이규혁의 은퇴 무대이기도 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치른 후 은퇴를 고민하다가 현역 연장의 길을 택한 이규혁은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현역에서 물러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2013~201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대회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이규혁은 다소 앞 조에 배치됐다. 그의 순서는 6번째였다.
이규혁이 속한 6조의 차례가 되자 아들레르 아레나에는 큰 함성이 울려퍼졌다. 온전히 그의 마지막 무대를 위한 환호성은 아니었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러시아의 이고르 보고류브스키(29)를 향한 러시아 응원단의 함성이 컸다.
소치올림픽에서 "온 힘을 쏟아붓겠다"고 했던 이규혁이었다. 그는 "초반에 승부를 보고 막판에 버티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 체력이 부족하지만 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고 했다.
이날 이규혁의 레이스는 그의 말대로였다. 이규혁은 초반 200m를 16초25로 통과했다. 10조까지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이규혁의 초반 200m 기록을 넘어선 선수는 없었다.
이규혁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보고류브스키가 크게 뒤처지자 러시아 응원단의 응원은 이내 잦아들었다.
그의 600m까지 기록은 41초76이었다. 이 역시 10조까지 레이스를 치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그렇게 이규혁은 매섭게 치고 나갔다.
이규혁이 600m를 통과할 때 즈음 경기장에는 "이규혁은 4차례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른 선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 600m를 통과한 후 이규혁의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규혁은 이를 악물었다.
속도가 점차 떨어지는 이규혁을 향해 소규모 한국 응원단은 함성을 지르며 힘을 불어넣었다.
결승선 끝까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레이스를 펼쳤다. 이규혁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조금이라도 기록을 줄이기 위해 힘차게 발을 뻗었다.
막판에 힘이 떨어진 탓에 1분10초0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미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규혁은 아쉬움인지, 홀가분한 것인지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이내 경기복 머리 부분을 벗은 뒤 한국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규혁은 자신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이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규혁이 가장 안쪽의 트랙에서 마저 숨을 고르는 사이 함께 레이스를 펼친 러시아 선수가 그에게 다가와 격려를 보냈다.
그렇게, 이규혁의 선수 생활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