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광수)는 16일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했다. ‘사초 실종’ 논란이 일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열람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한 건 지난 2008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에 이어 5년 만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9시45분께 경기 성남시 국가기록원에 도착해 회의록과 관련 자료에 대한 열람·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압수수색 대상은 출력물·녹음테이프·CD 등의 자료가 보관된 대통령기록관 서고,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팜스·PAMS), e지원(e知園·참여정부 청와대문서관리시스템)의 백업용 사본, 봉하마을에서 국가기록원에 제출한 e지원 사본, 이지원에서 팜스로 이관하는 과정에 쓰인 외장하드 97개 등이다.
이날 검사 6명과 디지털포렌식요원 12명, 수사관, 실무관 등 총 28명이 압수수색에 투입됐으며, 자료 이미징(원본을 전자적으로 복사하는 방식)에 필요한 서버 등 관련 장비가 여러 대 탑재된 4억원 상당의 포렌식 특수차량도 동원됐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에게 보고된 기록물은 e지원, 청와대비서실기록관리시스템(RMS)을 거쳐 이동식 하드디스크로 옮겨진 뒤 팜스로 이관되는 4단계 절차를 거쳤다.
검찰의 수사는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가 국가기록원에 넘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관련 자료가 실제 이관됐는지,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시절 고의로 폐기했거나 국가기록원의 관리소홀로 손상됐는지 등의 여부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검찰은 우선 팜스와 서고에 보관된 자료를 먼저 분석한 뒤 순차적으로 e지원을 재구동할 예정이다.
e지원을 재구동하면 회의록이 e지원시스템상에서 삭제됐는지, RMS나 팜스 등으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삭제됐는지 여부를 확인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폐쇄회로(CC)TV, 로그기록 등의 자료에 대한 분석도 병행한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서 회담 회의록을 고의로 폐기한 의혹이 불거진데 따른 논란을 의식한 것이다.
검찰은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팜스 로그기록 등에 대한 분석에서 유출 여부 및 경로 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폐기 시점이 기록물을 생산하기 전·후인지, 시스템 결함이나 관리 소홀에 따른 오작동인지 여부 등을 다각도로 확인할 예정이다.
다만 일반 대통령기록물은 이미징을 통한 사본 압수가 가능한 반면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열람 외에 사본제작이나 자료제출이 불가능하도록 제한을 뒀다.
검찰은 방대한 분석자료의 양을 감안해 최소 한 달여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전후까지 국가기록원을 출퇴근하면서 열람 및 분석 작업을 하게 된다. 수사팀은 밤 늦게까지 열람작업이 이뤄질 것에 대비해 야간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았다.
대통령기록관 서고에 있는 문서자료의 양만 해도 40박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주말까지 팜스의 이미징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팜스의 경우 로그기록이나 삭제 흔적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검찰은 예상했다.
수사팀은 이를 위해 기록원 안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했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 전 과정을 폐쇄회로(CC)TV도 녹화한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진척되는 대로 참여정부에서 기록물 생산, 이관 등을 담당한 핵심 관계자들을 차례로 소환할 계획이다. 수사가 마무리될 시점은 10월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 관계자는“(정상회담회의록)이관이 됐나 안됐나를 먼저 파악하는 게 관건”이라며“이관 여부가 명백하면 더 이상 볼 게 없지만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이관됐는지 안됐는지, 자료가 없다면 로그인 기록 등을 통해서 이관 전에 삭제나 폐기된 흔적이 있는지까지도 모두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다음에 소환에 불응한 여러 사람 조사를 통해서 이관이 안됐다고 하면 어떤 단계에서 어떤 경위로 이관이 안됐는지에 대한 수사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참여정부 시절 기록물 생산, 이전에 관여한 청와대 담당 부서의 직원 30여명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기로 하고 소환에 계속 불응하고 있다.
검찰은 아직 강제구인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13일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대통령지정기록물과 일반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각각 발부받고, 14일에는 국가기록원 측과 열람 절차와 방법 등을 협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