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52)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49) 수석 부회장이 2일 나란히 법정에 섰다.
최 회장이 법정에 다시 선 것은 2003년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2005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은 뒤 처음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최 회장 등은 안정적인 현금을 확보하고 투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공모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범행 당시부터 형사 책임을 검토해 소위 '바지 사장'을 내세워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다른 대기업 횡령 사건과는 다른 새로운 횡령 범죄"라며 "향후 다른 대기업들의 자금 횡령 사건에 있어서도 총수는 빠질 수 있도록 하는 노하우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 회장의 변호인은 "이번 사건을 두고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내수를 중심으로 하는 SK그룹에 있어 펀드를 통한 투자는 신 성장 전략이다. 다만 펀드 출자금으로 사용할 돈을 한달 간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펀드 출자액을 일시적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을 알지 못했다"며 "최 부회장 역시 '조합 결성 전까지만 반환된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김준홍 대표의 말을 듣고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은 법정에 들어서기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다 제 부덕의 소치"라며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오해가 있는 부분들을 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정에 선 최 회장은 "이번 사건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하면 재발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며 "다만 이런 오해까지 받을까 하고 자괴감이 들고 잘못됐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2008년 SK텔레콤 등 SK그룹 계열사 18곳이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원 중 497억원을 동생 최 부회장과 이 회사 김준홍(47·구속기소) 대표와 공모해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2005년부터 5년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것처럼 꾸며 139억원대 비자금을 조성, 선물투자에 활용하거나 투자 손실을 메우는 데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과 그룹 투자금을 빼돌린 혐의 외에 추가로 계열사 베넥스의 자금 49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와 비상장사 아이에프글로벌(IFG) 주식 6500여주를 액면가보다 부풀려 주당 350만원에 베넥스에 매각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한편 이들에 대한 결심 공판은 이르면 5월21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