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은 끝에 다시 '끝장토론'을 열기로 합의했다.
전날 있었던 '끝장토론'이 발언시간 제한 등을 놓고 파행을 빚어 중단된 데 이어 이날 여당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비준안을 상정하자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대립은 격화됐다. 그러나 일단 여야가 끝장토론 개최에 합의함에 따라 급한 불은 끈 상황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이날 오후 전체회의 도중 여야 간사인 한나라당 유기준·민주당 김동철 의원과 논의를 거친 뒤, "여야 간사의 합의를 거쳐 20∼21일 이틀간에 걸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끝장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여야는 비준안 강행 처리를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점거한 가운데 열린 외통위 전체회의에 다소 설전을 벌인 끝에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 이같이 합의했다.
남 위원장은 "위원장이 보기에 (끝장토론이) 모자란다면 다시 추후 날짜를 잡을 수도 있다. 금요일(21일)까지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며 "토론 양식은 합의에 따르고, 국민들 앞에 소상하게 찬반 측 의견을 개진하도록 발언권을 충분히 드리겠다"고 말했다. 토론 사회는 남 위원장이 맡을 예정이다.
앞서 이날 외통위에서는 오전에 예정돼있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한나라당 측이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하면서부터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함에 따라 긴장국면이 지속됐다.
이와 관련해 야당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유선호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말만 끝장토론이지 3분, 5분 이렇게 시한을 자르면서 어제 끝장토론이 무산됐다"며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실질적인 끝장토론에 들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정동영 의원도 "일자리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국민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한·미 FTA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며 "한나라당은 끝장토론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매국행위를 저지른 데 대한 최소한의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강조했다.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글자 그대로 끝장토론에 걸맞은 토론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민노당 원내대표로서 여야 교섭단체 대표 간의 협상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 주변을 점거한 가운데 남경필 위원장이 위원장석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회의를 여는 풍경이 빚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끝장토론 재개를 주장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위원장석에 앉고 주변을 민주당 의원 등이 에워싸는 등 비준안 강행 처리를 저지했다.
이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제히 야당 의원들의 점거에 대해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민노당이 진짜 반대하는 것은 FTA가 아니라 미국 아니냐"며 "한·미 FTA가 아니라 반미 FTA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하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은 한·미 FTA와 반미 FTA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오락가락 하다 길을 일었다"며 "언제까지 안방을 내주고 사랑방 신세를 전전할 것인지 딱하다. 민주당 손으로 점거정치를 풀라. 그게 민주당이 살 길"이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구상찬 의원도 "우리가 강행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 알고 있잖나. 강행 처리 안 한다. 선언했잖느냐"며 "강행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강행 처리하라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이미 강행 처리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여야 의원들의 대립을 비판하면서 "누구를 위한 끝장토론인가. 그로 인해 피해를 볼 산업분야나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 아니냐"며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남 위원장은 그동안 대책이 어떻게 진행돼왔고 통상절차법이 어떻게 됐는지 위원들에게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며 "내용과 과정 등을 설명하고, 의회가 토론을 제대로 하고, 합의가 됐으면 합의된 대로 진행하되 중요한 것은 농어촌에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고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대립 속에 위원장석 앞에 서서 회의를 진행하던 남 위원장은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민노당 의원이 위원장석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며 "한·미 FTA를 원천적으로 힘으로 반대하려고 한다면 국민의 뜻에 맞게 물리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야 간사와 논의 끝에 끝장토론 추가 개최에 합의한 뒤 남 위원장은 "민주주의가 소수의 물리적 폭력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충분히 대화와 토론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절대로 물리력을 동원해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며 "오늘까지만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 앞으로 또 다시 이렇게 하면 단호히 막아내겠다"고 야당 측에 경고했다.
한편 이날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준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도 생각이 있으니까 잘 하겠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