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경기는 인생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치열함, 승부, 환호, 절망, 회복. 경기하는 선수 뿐 아니라 관전하는 사람도 그 스릴을 고스란히 함께 느낍니다. 무릇 운동경기에는 반드시 승패를 가르는 위기의 순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위기다 싶은 때에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그 위기가 반전되어 대 역전을 펼치는 장면에서 진정 운동경기의 참 맛이 있습니다. 그 흐름의 전환을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 전환점) 라고 합니다.
배구경기는 세트경기여서 종종 세트스코어 0대 2로 지던 팀이 3대2로 대 역전극을 연출하는 경우를 봅니다. 만일 그 대 역전이 펼쳐지고 있는 배구경기에서 과연 어느 곳에 터닝 포인트가 있을까요?
세트를 어느 편이든 3개 따내야 이기니까 이미 2개를 지고 있었으므로 역전을 했다면 3번째 세트에서 이겨 1대 2로, 4번째 세트에서도 이겨 2대 2가 되고, 마지막 5세트에서도 이겨 세트 스코어 3대 2로 이겼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과연 대 역전을 펼칠 수 있었던 전환점은 어느 지점에서 있었겠습니까가 질문입니다.
3번째 세트? 아니면 4번째 세트? 아니면 5번째 세트에서? 다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2번째 세트에서 있습니다. 즉, 싱겁게 내준 첫 세트가 지나고, 두 번째 세트에서 15점을 먼저 따낸 팀이 세트를 이기니까 3대 10까지 지다가 7대 10 → 10대 10 → 계속 엎치락 뒷치락 하다가 13대 15나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다 두 번째 세트를 내어 주는 경기에서 역전드라마가 나오는 겁니다. 대 역전은 물론 그 이후의 3, 4, 5세트를 모두 힘겹게 이겨야 최종적인 승리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2번째 세트에서 ‘비록 무지 아깝게 내어 주었지만 죽을 힘을 다한’ 그 ‘무엇’이 있고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무엇’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유이주민들입니다. NGO 선한사람들 자유시민대학의 학생들. 빛을 찾아 어둠을 뚫고 나와서 몸부림쳐 날개짓을 하는 분들.
저는 이들을 성경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의 ‘오병이어’라고 여깁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예수님께서 오천명(여자와 아이들을 빼고)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 남을 만큼 기적을 베푸셨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있는 것을 내어놓으라는 말입니다. 없는 것을 구해오라고, 만들어 오라고, 사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얼마든지 당신 혼자서 거기에 없는 다른 메뉴를 주실 수 있었습니다. 즉, 광야의 메추라기 떼든지, 만나든지, 심지어 숯불 바베큐든지 무엇이 불가능 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시고자 하셨던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넉넉히 채우시는 분이심을 보이신 것 뿐 아니라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예수님께서 축사(기도)하심으로 역사가 나타남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역사하셔서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기적을 소망하는 편에서의 최소한의 ‘못자리의 준비’ 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분단된 지 57년이나 지났습니다.(양쪽에서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의 시점으로부터) 하나님께서 한반도 상황을 모르고 계실까요? 한쪽 눈을 감고 계신 것일까요? 94년 이후로 98년 정도까지(99년도 이후 국제 지원으로 식량난이 다소 나아졌다고 봄) 적어도 300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에 대해, 이 민족의 내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실까요? 통일은 과연 가능한가요?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뜻하시기만 한다면 통일은 어렵지 않을 텐데요. 아니 벌써 되었을 텐데요.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이 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소망을 거두지 않으셨다고 믿습니다. 아니 이 남한 땅에 통일을 위한 준비가 안 되어 있기에 그것을 준비시키시기 위해 하나님 편에서 개입하셔서 통일을 위한 인도를 성실히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이주민들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어려워만 보이는 통일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고 모두가 승리하는 통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렇게나 일하지 않으십니다. 역사하시는 원리를 따라 하십니다. 2천년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미리 이 땅에 오병이어를 준비시키시기 위해 자유이주민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분들을 체제와 문화가 다른 남한 땅에서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게 함으로서 내일의 통일을 준비하게 하며, 남북한 공동체를 위한 인재로 예비하셔서 결국 통일이라는 ‘오병이어의 기적’ 을 일으키시려는 뜻을 갖고 이 민족의 장래를 인도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서 자유이주민들이 역사적 정체성을 갖고, 균형된 인식능력과, 자기 관리 및 개척능력, 경제적인 자립능력과 남의 아픔을 헤아려 사랑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을 위해 자유시민대학과 같은 모내기를 위한 작은 못자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역사적인 소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2000년도 이후에 1년에 1천명 이상의 자유이주민들이 들어옵니다. 지금까지 약 6천여명정도 됩니다. 통일과정은 남북영토와 국민의 결합이면에 남북 주민이 하나로 되는 과정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남한사회가 자유이주민들을 보듬어 안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연습해 가는 것이 실제적으로 통일시대를 위한 중요한 준비라고 믿습니다. 그런 준비가 성실히 이루어져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것이 이 민족에게 통일로 나타날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며, 모두가 승리하는 통일 말입니다. 못자리가 건강하게 준비되지 않고서 풍성한 추수가 없듯이, 오병이어가 준비되지 않고서 기적이 일어날 수 없듯이 자유시민대학과 같은 정착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자유이주민들이 이 땅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는 또 자유이주민이 통일 과정에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안정되고 소망스런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민족의 대역전을 이루시기위해 그 전환점이 될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찍고 계십니다. 지금 이 시점이 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