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한 발행인
불법도청 그만 합시다
97년 대선직전 재벌 기업과 일간지 고위간부가 만나 정치자금 지원방안 등을 논의한 내용이 녹음된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대한 보도가 터져 나오자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영삼 정권 시절인 지난 1993년부터 98년까지 특수 도청팀인 ‘미림’을 운영, 정계와 재계, 언론계 등 주요 인사들의 사적인 만남에서의 발언을 불법으로 도청해 왔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청방법과 담당기관, 도청대상 등이 드러나고 있으나 국민들은 정치사찰 금지 등을 내세웠던 문민정부에서조차 이 같은 불법행위를 저질러 왔다는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불법으로 얻어진 도청 자료는 정권실세는 물론이고 야당의 중심축으로까지 흘러 들어가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요긴하게 쓰였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에따라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정·재·언 유착관계를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을 해소하는데 관련기관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당부를 했으니 어느정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검찰내 일부에서는 언론기관의 ‘안기부 X파일’ 보도가 ‘통비법 위반’이라는 법적 문제와 함께 의혹 내용들이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견해를 내세우며 수사 자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여론해소용 수사로 끝날수도 있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야
국정원은 이번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빼돌린 전 안기부 직원들과 주변 관련자들 모두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 이번 의혹에 대한 사건진상 규명이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이로인한 후폭풍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터져 나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편파적 보도가 아니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라는 식의 논리가 전개되고 있어 결과에 따라 차기 대권과도 연계될 소지가 많다. 혹, 이번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해관계로 인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에 국민과 관계기관, 정치권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불법 도청에 관련된 전 안기부 직원들은 ‘휴대전화도 도청’ 된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이 ‘도청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수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