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하이닉스는 세금 해외에 내
대신 구글·애플 등은 국내서 거둬
[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구글처럼 세계에서 돈을 벌면서도 각국에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기업에 물리는 '디지털세'(Digital Tax)의 윤곽이 드러났다.
한국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세금 일부를 다른 나라에 내주는 대신 구글·애플 등에서 거둘 것으로 보인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재계는 득실 따지기에 한창이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디지털세의 국제 논의를 이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 20개국 협의체(G20) 포괄적 이행 체계(IF)는 제13차 총회를 열고 회원 140개국 중 136개국의 지지를 얻은 최종 합의문과 시행 계획을 공개했다. 지지하지 않은 회원국은 케냐·나이지리아·파키스탄·스리랑카다.
합의문의 골자는 ▲연결 연 매출액 200억유로(약 28조원) 및 10% 이상의 이익을 내는 다국적 기업(금융업·채굴업 등은 제외)에 ▲세계에서 벌어들인 이익 중 통상 이익률(10%)을 넘는 초과 이익의 25%를 시장 소재국에 세금으로 내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세 논의의 2개 축 중 하나인 '필라(Pillar) 1'이다.
한국에서는 1~2곳의 기업이 적용 대상으로 거론된다. 기재부는 이들 기업이 시장 소재국에 내는 디지털세만큼을 한국에 내는 법인세에서 공제해주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운용 중인 '외국 납부 세액 공제' 제도를 준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나라에 낸 세금을 납부 세액에서 빼주는 방식이다.
'필라 2'는 세계 각국에 최저한 세율을 도입하는 것이다. 연결 연 매출액이 7억5000만유로(약 1조원)를 넘는 다국적 기업(국제 해운업 등은 제외)은 어느 국가에서, 어떤 형태로 사업하든 15%의 세금은 부담해야 한다. 이는 법인세율을 10%대 초반으로 유지하는 아일랜드와 같은 조세 회피처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다.
기재부는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아 이번 합의문에 따른 세금 수입 효과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필라 1·2를 모두 고려할 경우 긍정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과 국세청에 따르면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 19개 다국적 기업이 지난해 한국에서 낸 법인세는 1539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네이버 1곳이 같은 해 낸 법인세의 40%에도 못 미친다.
다만 한국이 꾸준히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큰 만큼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 민간 전문가의 분석이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낼 세금이 정부가 받을 돈보다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236조8070억원, 영업이익은 35조9939억원이다. 이 중 연 매출액의 10%(23조6807억원)를 넘는 이익은 12조3132억원이다. 단순하게 계산할 경우 이 금액의 25%인 3조783억원가량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구글 등으로부터 이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 7월 IF 제12차 총회 이후 당시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재부가 연 브리핑에서 정정훈 소득법인세정책관(국장)도 "국가에 따라서는 플러스·마이너스 요인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각국이 이런 구조에 맞춰가다 보면 이 제도 시행 후기로 갈수록 한국은 직접적 세수 증대 효과가 다수 반감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얻을 수 있는 다국적 기업 정보가 많아져 국세청의 힘이 더 세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국세청은 지금까지 다국적 기업의 자료를 얻기 힘들어 애를 먹었는데 디지털세 합의가 끝나면 소득을 포함한 각종 자료를 자연스레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필라 1의 경우 원래 내던 세금의 납부처를 본국에서 시장 소재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셈이라 세 부담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낯선 나라의 과세 절차를 익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납세 협력 비용 지출은 감수해야 한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지방세 포함 최고 27.5%로 높은 편이라 필라 2 역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관측이다. 다만 아일랜드 등 15%보다 낮은 세율을 유지하는 국가에 진출한 기업은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이 합의안은 1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보고된다. 이후 이달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추인된다. 여기서 원만히 채택될 경우 합의안은 법적 효력이 있는 다자 협정 등으로 구현된 뒤 이르면 오는 2023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