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조사기관, 공급 초과로 4분기 D램 가격 3~8% 하락 전망
반도체 장기 호황 기대에 찬물
[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비관론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가격 하락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시장 곳곳에서 암울한 전망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장기 호황(슈퍼 사이클)을 향한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모습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지난달 23일 4분기(10~12월) 세계 D램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며 D램 가격이 3~8%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업체는 현재 D램 수요 업체들의 재고가 충분한 상태로, 앞으로 예방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코로나19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전자 제품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렌드포스는 "공급사와 고객사 모두 내년 1분기(1~3월)에도 D램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에 공급 업체들은 10% 이상 큰 폭의 할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최근의 반도체 호황이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 AMD의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 2021'에서 "새 공장을 짓는 데 18~24개월이 걸릴 수 있고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투자는 아마 1년 전에 시작됐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확대되면 공급 부족 문제가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 CEO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내년 하반기 완화될 것으로 점쳤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기술 컨퍼런스에서 "전 세계적인 칩 부족은 '단기적인' 문제일 뿐 장기적으로 벌어질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면서 "반도체 위기는 내년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와 맞물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앞으로의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면서 비관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회계연도 기준 4분기(6~8월)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국 회계연도 1분기(9~11월) 매출이 시장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완만한 수요 하락에 직면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마이크론이 매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면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재택 근무, 원격 수업 등으로 PC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시장이 호황을 맞았다면, 앞으로 일상을 회복할 경우 시장의 성장을 이어갈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올 연말까지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키움증권 박유악 연구위원은 SK하이닉스 뉴스룸에 올린 기고문에서 "노트북 총 판매량이 비수기인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하락하며 PC OEM(주문자 상표 부착생산)들이 D램 재고를 조정하고, 이에 따라 D램 업황의 단기인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박 연구위원은 "PC D램이 전체 D램 시장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 수준에 불과하다"며 "PC D램 재고 축소가 내년 1분기까지 단기 업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내년 전체 업황의 흐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예상했다.
특히 그는 PC 수요가 줄더라도 D램 총 수요의 34%를 차지하는 모바일 시장으로 수요가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내년 상반기에는 차세대 DDR5 양산을 위한 D램 공급의 감소와 서버·모바일의 수요 회복이 나타나면서 반도체 업황이 내년에 다시 한번 상승 탄력이 강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반도체 수출액은 121억8100만 달러로, 월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전 세계 교역 회복과 반도체 수요 증가의 영향 덕분으로,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8%까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