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조류인플루엔자(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현재까지 살처분된 가금류의 수는 2000만마리에 가깝다. AI 확진 판정을 받은 지역은 27개 시·군이지만, 의심신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곳곳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의심신고가 속출하는 등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의 오리 산지인 전남 나주에서 세 번째 발생한 AI가 ‘H5N6형 고병원성 AI’로 확진 판정됐다. 방역당국과 나주시는 남평읍 상곡리에 위치한 종오리 농장에서 사육 중이던 오리 1만7000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했다. 또 농장에서 출하한 오리알이 해남과 나주의 또 다른 부화장에 반출된 것으로 확인돼 이동제한 조치와 함께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주의 오리 사육량은 30농가 151만마리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나주에서는 지난달 28일 공산면 중포리 종오리 농장, 12월7일 동강면 장동리 종오리 농장에 이어 세 번째 AI가 발생했다.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던 경기 포천과 이천의 닭 농가 등 총 7개 농가에서도 AI 추가 확진 판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경기도 내 AI는 양주 포천 이천 안성 화성 평택 양평 등 7개 시·군 29개 농가로 확산됐다. 경기지역에서 AI로 희생된 닭과 오리 등의 가금류는 500만마리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충남 아산과 충북 충주, 전북 정읍, 세종에서 접수된 의심신고도 AI로 최종 확진된 바 있다. 해당 농가에서 사육 중인 오리(아산 7800마리, 정읍 1만4000마리), 닭(충주 100마리, 세종 7만5000마리)은 각각 예방 차원에서 매몰 처리됐고, 농장을 중심으로 방역대를 설정해 이동통제, 거점소독시설 설치·운영 등 긴급 방역조치가 실시됐다.
의심신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철새도래지가 없는 전남 구례 용방면 육용 오리 농장에서, 19일에는 전북 정읍시 소성면의 한 종오리 농가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따라 정읍에서는 7000마리의 오리가 예방적 살처분됐다. 특히 구례의 경우에는 살처분 예정인 해당 오리 농장과 주변 농가의 오리만 4만6200마리이며, AI 판정에 따라 살처분이 검토되는 반경 3km 이내 농가 가금류는 20만4000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단계 ‘심각’… 2000만마리 살처분
AI로 살처분된 가금류의 숫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19일까지 총 344개 농가에서 살처분·매몰된 가금류 수는 1668만6000마리이며, 앞으로 22개 농가의 242만2000마리가 추가로 살처분될 예정으로, 2000만마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역대 최악을 기록했던 2014년 상반기(1396만마리) 기록은 이미 훌쩍 넘어섰다.
정부는 당초 철새에서 항체가 검출되기 시작한 점을 들어 철새를 통한 바이러스 배출량이 급격히 줄면서 AI도 잦아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의심신고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15일 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AI 위기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 수준으로 상향했다. 정부는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AI 발생이 지속되는데다 살처분 마릿수 증가에 따른 불안감이 증대되는 점을 고려했다”며 “야생철새의 도래가 늘어나고 겨울철 소독여건도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AI가 수그러들기는커녕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는 ‘살처분 지연’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살처분이 조속히 이뤄져야 바이러스 배출이 줄어드는데 인력과 매몰지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24시간 안에 살처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평균 2.3일, 50만마리가 넘는 농장은 일주일이 넘어가기도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축산업계 부주의도 확산에 영향
AI 바이러스가 유입된 원인은 철새에 의한 것이지만 ‘최악의 확산’이 벌어진 이유는 축산업계의 부주의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AI 발생 역학조사 중간상황 브리핑’에 따르면 철새 이동경로와 주변국 H5N6형 발생을 볼 때 겨울철새의 번식지인 중국 북쪽지역에서 감염된 철새가 국내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중국 광동성과 홍콩 등에서 유행한 H5N6형과 유사했던 것.
정부는 우선 감염된 철새가 주로 서해안 지역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키고 오염된 지역에서 사람과 차량, 야생 조수류(텃새) 등을 통해 농장 내로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농장 주변의 오염된 환경에서 축주나 농장 방문자가 소독 절차 없이 농장을 방문하거나 사료·왕겨·약품 등 물품 반입, 알 반출 등의 과정에서 오염원이 농장 안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축종별로 보면 산란계와 종오리, 육용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했다. 이 중 산란계는 계란 운반으로 인해 육계 농장보다 차량이 빈번하게 드나든다는 특징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계란운반기사가 계란을 상차하는 과정에서 방역복을 착용하지 않고 작업한 횟수가 38건 중 28건(73.6%)으로 나타났다. 농장 안에 폐사체와 왕겨를 버리는 계분장이 있는 경우도 25건(65.7%)을 차지했다. 계분장은 계분차량이 자주 드나드는 데다 야생 조수류가 꼬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종오리 농장 종사자들이 오리 관리와 집란, 종란 운반 등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업무를 전환할 때 소독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는 100%(12건 중 12건)에 달했다. AI 양성으로 확인된 육용오리 59건 중 26건(44%)은 2회 이상 AI가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나 재발생 확률이 높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농장이 비닐하우스로 이뤄져 있어 그물망 등의 설비가 노후하다”며 “농가 출입구에 소독시설은 구비돼 있지만 농장경계가 불분명하고 출입차단표시가 없는 농가도 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