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한미약품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한미약품 본사에 이어 증권사까지 압수수색을 벌였다. 한미약품은 계약파기 사실을 전달받고도 다음날 주식시장 개장 후 28분이 지나서 공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으며, 이 사실을 공시 전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투자심리 악화가 관련 업종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검찰은 ‘한미약품 사태’와 관련, 삼성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 증권사 13곳을 압수수색했다. 공매도 주체 세력과 이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정황이 있는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매도 주문 관련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주문 대화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의 경우 지점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지점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며 “한미약품 주식 거래가 많이 이뤄졌던 지점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 모두 한미약품 거래를 하는데, 그날 거래가 있었던 곳은 전부 (조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약파기 공시까지 ‘14시간’ 시차
공매도 절반이 공시 직전 거래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오후 7시6분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 측으로부터 7억3000만달러(약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 내용을 이메일로 전달받고 다음날 오전 9시28분에 이 사실을 공시했다. 문제는 악재 공시까지 14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미약품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 이전인 29일 오후 4시33분,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표적항암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을 공시한 상태였다.
다음날 증권사들은 한미약품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의 리포트를 내놨고, 한미약품은 주식시장 개장 28분이 지나고 나서야 전날 있었던 악재를 공시해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만들었다. 호재 공시 후 악재 공시를 즉각적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주식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계약파기 통보를 받기 직전인 29일 오후 6시53분부터 관련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계약파기 발표 날 한미약품 주식 공매도량은 10만4327만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그중 절반가량인 5만471주가 공시 직전에 거래됐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 부장검사)은 지난 17일 한미약품 서울 방이동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20일에는 한미약품 직원 김모(27·여)씨와 회사원인 남자친구 정모(27)씨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와 정씨가 유출 의혹 자체가 있기 때문에 수사 대상자가 된 것”이라며 “수사 주 대상은 공매도 부분이다. 현재 김씨가 유출한 정보가 정씨를 통해 공매도 세력으로 넘어갔다는 정황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검토하느라 지연된 것”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은 늑장 공시 의혹에 대해 “고의적으로 지연한 것이 아니다”라며 “내부 검토 과정에서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계약 공시는 거래소와 협의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내부적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이를 검토하느라 시간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한미약품은 홈페이지에 ‘존경하는 주주여러분’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도 비슷한 해명을 했다. 한미약품은 “공시규정상 다음날 오후 6시까지 공시하면 되지만 호재 발표 직후 악재 발표로 인한 시장 혼란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공시하고자 했다”며 “이번 주가 폭락과 그로 인한 심려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희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계약 해지 건으로 이슈가 된 올무티닙은 당사가 가지고 있는 30여개 전임상, 임상 파이프라인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며 “이번에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RAF 저해제도 기대가 큰 신약이다. 대한민국을 신약 강국으로 만드는데 앞장서 온 당사를 부디 다시 한 번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시가총액 3조7000억원 감소… 제약주 투자심리 악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의약품업종 시가총액은 9월30일과 10월4일 이틀 동안에만 2조9000억원 감소했다. 주당 62만원이던 한미약품의 주가는 19일 기준 40만1000원까지 떨어졌으며 관련 업종 시가총액은 3조7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유가증권시장 의약품업종 48개 종목 가운데 한미약품의 시가총액 비중은 의약품업종 전체의 16.46%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로 다른 제약주들도 대부분 약세를 보이면서 전문가들은 제약주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17시간의 시차를 두고 대규모 호·악재가 공시돼 시장에 혼란을 준 점은 신뢰성 측면에서 투자심리에 부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정보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호재에 뒤따른 악재 공시, 더군다나 장 시작 직후라는 공시시점과, 작년 2분기 실적발표 당시 기술수출 계약에 이은 적자실적 발표로 인한 주가 폭락사태 이후 두 번째 사례라는 점 등으로 인해 한미약품 자체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서근희 대신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신약 개발 성공을 앞으로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헬스케어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내 상장을 앞두고 있던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한미약품 사태’가 불거지면서 상장 연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 예정이던 CJ헬스케어, 셀트리온 헬스케어의 경우 현재 한국거래소에 예비심사 청구도 안한 상황이라 연내 상장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주관사를 선정한 후 한국거래소에 심사청구서를 제출, 승인을 거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까지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들이 연내 상장하는 것은 무리”라며 “‘한미약품 사태’로 제약·바이오주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번지고 있어 일단 지켜보거나 상장을 늦추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