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선광 기자]벽에 부딪히는 듯 했던 청주 안승아(당시 4살) 양 암매장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준 건 승아 양의 친모 한모(36·사망)씨가 남긴 다량의 메모였다. 사건 초기 계부 안모(38)씨의 입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승아 양 부모에 대한 종합적인 수사로 방향을 전환했고, 한씨가 생전에 쓴 메모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24일 청주 청원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씨는 승아 양에 대한 애증, 남편에 대한 불만 등 복합적인 감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학생용 노트 5권과 낱장 수십 장을 묶은 노트 1권을 남겼다. 일부는 날짜를 정확히 기록한 일기 형식이었다.
경찰은 한씨가 딸을 죽음으로 내몬 감정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애(승아)가 와서 우리 가정이 파괴됐다'는 부분이다.
메모를 분석한 경찰은 승아를 안타깝게 여긴 남편이 고아원에서 집으로 데려온 후 한씨가 딸을 미워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
안씨가 당시 임신 중이던 자신에게 소홀하고, 승아에게만 관심을 보인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한씨가 승아를 가정불화의 씨앗으로 보고 학대해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보고 있다. 학대 정황은 병원 진료기록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곽재표 청원서 수사과장은 "승아가 집으로 돌아온 시점은 2011년 4월인데, 그 해 5월과 12월 두 차례 타박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타박상은 다리를 다친 기록이었다"며 "부모의 학대가 원인이라면 안씨와 한씨 중 누구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승아는 2011년 12월 친모 한씨의 가혹 행위로 숨진 뒤 부모에 의해 암매장됐다.
주목할 건 한씨가 아이를 암매장한 후에는 메모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승아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 딸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계부 안씨의 폭행 사실도 메모를 통해 확인했다.
안씨는 그동안 경찰 조사에서 의붓딸 '학대'에 부인해왔다. 그러나 아내 한씨의 메모가 발견되면서 학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메모에 '이마를 때려 눈 부위에 멍이 들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경찰 조사에서 안씨는 자신이 한 두 차례 승아를 때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경찰은 계부 안씨를 사체유기 혐의 외에도 아동복지법 위반(폭행방임) 혐의를 추가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곽 과장은 "메모장에서 친모의 학대와 심리적 상태 등 이번 사건의 많은 단서를 찾아냈다"며 "안씨의 혐의를 입증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