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세권 기자]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에 따른 파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여야가 이번 국회의원총선거의 최대 변수로 '야권통합' 여부를 꼽고 있는 가운데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통합논의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일 김종인 대표의 제안 직후 "공작정치를 한다",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제안을 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핵심 지도부 주요인사들은 물론 현역 의원의 절대 다수가 통합 또는 연대 논의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는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 사실상 안 대표를 배제한채 통합을 전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져 주목을 끌고 있다. 더민주는 통합이 안된다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야권 연대라도 실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매 선거마다 여야가 1대 1구도로 팽팽하게 경합했던 수도권에서 야권통합 여부는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수도권 선거가 현행대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정의당, (원외)민주당 등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지면 여권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야권이 경선이나 협상 등을 통해 '통합' 또는 '선거연대'에 나설 경우 승패는 장담하기 힘들다.
◆‘심상찮은’ 국민의당…의원들 긍정여론에 안철수 ‘고립’
안철수 대표는 즉각 야권통합 제의를 거부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현역 의원 중 통합논의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10여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안철수 대표와 함께 '트로이카' 지도체제를 이루고 있는 천정배 공동대표, 김한길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통합논의에 긍정적이어서 안 대표는 사실상 '고립무원' 상태다.
천정배 대표는 3일 오전 당사에서 안철수 대표·김한길 선대위원장과 30여분간 회동을 한 후 기자들을 만나 "내부에서 논의를 해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김종인 대표의 말이 있든 없든 간에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대표는 특히 "우리가 30석을 얻는 것이 최우선이고, 새누리당을 깨는 것은 다음 목표라고 하는 것과, 새누리당의 과반수를 저지하는 것이 지상목표이고 그 다음이 우리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차이"라며 "저는 후자라고 보는 사람"이라고 발언, 당내 통합 반대 세력을 겨냥했다.
김한길 선대위원장 역시 "깊은 고민과 뜨거운 토론이 필요한 문제"라며 "양당 중심정치를 극복해 보려다가 오히려 1당 독주를 허용하게 되서는 안 되겠다 하는 데 깊은 고민들이 있다"고 발언, 통합론에 힘을 실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자 호남의 맹주인 박지원 의원의 국민의당 입당은 심상찮은 조짐이다. 박 의원은 제3지대에서 야권통합을 추진하겠다며 더민주를 탈당했고, 탈당 후에도 '소통합', '중통합', '대통합'으로 이어지는 야권통합을 끊임없이 말해왔다.
박 의원은 2일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의 입당 합의문에도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 세력의 결집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민생정치를 구현하자'는 문구를 넣었다.
그는 입당 다음날인 3일에는 "야권 분열로 비호남권에서는 총선 필패가 눈에 보인다"며 "총선에 불을 붙이는 촉매 역할도 하고, 야권 통합도 주도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분노…측근세력 '부글부글'
안철수 대표는 3일 부산을 찾아 "한 손으로 협박하고 다른 쪽으로 회유하는 것을 비겁한 공작이라고 한다"며, 김종인 대표를 정조준했다.
안 대표는 "막말 정치, 갑질 정치, 낡은 정치"라며 "이제 한 달 된 새 정당에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이런 퇴행적 수단을 동원하는 지 참 딱하다"며 통합논의를 재차 거부했다.
안철수 대표의 측근세력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더민주에 문제의식을 갖고 탈당해 창당을 한 지 한 달이 지난 상황에서, '야권통합' 논의가 나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는 불만이다.
한 차례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더민주의 전신)와 합당했다가 다시 탈당해 창당을 한 안철수 대표로서 야권통합론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카드다. 다시 한 번 더 창당을 접고 제1야당과 합할 경우 정치적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대표가 '야권통합'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안 대표를 '저격'하는 것도 측근세력들의 불쾌감을 높이는 요소다.
김 대표는 2일 오전 야권통합을 공식 제의하면서 "'이기심'에 집착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대화하던 중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며 안 대표를 겨냥했다.
3일에도 안 대표를 향해 "대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통합) 반대의견을 낼 수 밖에 없다"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마지노선 24일…“경선 전에는 가닥 잡혀야”
더민주는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통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안 대표가 계속 거부할 경우 안 대표를 통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 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면 공당인 만큼 의원총회 등을 열어 의견을 모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권통합이나 연대는 총선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이달 24일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 약 20일이 남은 셈이지만 면접과 경선, 전략공천, 비례대표 등 선거일정을 감안하면 시작이 촉박하다.
더민주는 이미 전략공천을 대비해 후보 공천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후보들에게는 해당 지역이 야권통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의 한 관계자는 "최소한 경선이 이뤄지기 전에는 가닥이 잡혀야 한다"며 "상황상 국민의당 후보와 경선을 할 시간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당에서 후보들에게 미리, 연대 등이 이뤄지면 승복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놔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위장이혼·꼼수”… “국민우롱” 반발
한편 새누리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위장이혼", "꼼수" 등의 발언을 해가며 김종인 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질성 때문에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갈라진지 반년도 안 됐다"며 "선거을 위해서만 뭉친다면 야권 분열은 처음부터 연대 염두로 선거보조금을 노린 위장이혼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호 최고위원 역시 "김 대표가 다시 야권 통합 얘기를 했는데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며 "이렇게 합치면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과대망상"이라며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정치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 역시 "더민주는 과거 수차례 헤쳐모이는 과정에서 뭉치면 이기고 분열하면 죽는다는 선거 공식을 알고 있다"며 "뻔히 알면서도 일부 의원이 집 나가는 걸 모르는 척 하던 더민주, 이혼도장이 마르기 전에 재혼하자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고 비판했다.
황진하 사무총장 역시 "분열된 야권이 선거야합이라는 습관적 정치 꼼수를 다시 시작했다"며 "애당초 야당 분열 원인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이합집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