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야권통합'을 전격 제안한 배경과 그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테러방지법을 막기위한 9일간의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형성된 야권세력 결집의 여세를 몰아 총선 승리를 일궈내고 당내외에서 제기되는 '독단' 논란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다목적의 회심의 카드로 해석된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당장 거부입장을 밝히고 나서 통합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다만 총선 흐름이 야권에 상당히 불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야권통합 내지는 야권연대 논의가 본격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野, 총선서 단합된 모습 보여야”
김종인 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야권에 다시 한 번 통합에 동참하자고 제의한다”며“이기심에 집착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야권승리를 가져오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결코 야권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번 총선 분위기를 감안하면 야권세력 통합이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분열이 아닌 하나로 뭉친 야당으로 집권 여당,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과 승부를 벌여야만 승산이 있을 것으로 진단한 것이다.
야권이 하나로 뭉쳐 현 정부의 경제실정과 양극화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지지세력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설사 이 제안이 실패한다하더라도 더민주 입장에서는 분열된 야권을 하나로 통합하기위해 노력했다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어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과 이미지를 제고하는 계기가 돼 손해볼 것이 없다.
'야권통합'론은 언제나 제1야당에 유리한 카드다. 통합에 성공할 경우 여당에 대항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실패한다고 해도 군소 야당의 힘을 뺄 수 있다.
관심은 제1야당을 지향하고 있는 국민의당에 쏠린다. 국민의당은 이 제안을 즉각 거절했으나 내심 복잡한 심경일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하나로 뭉쳐 새누리당과의 1대 1구도를 만들자는 것을 거절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야권분열을 조장했다는 책임을 안을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새정치'를 주창하며 창당을 한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특히 한 차례 창당을 접고 더민주와 합당했다가 다시 탈당해 2차 창당을 한 안철수 대표로서는 또다시 '야권통합'을 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대권주자로서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사실상 공천을 겨냥해 탈당한 인사들의 반발 역시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가 이날 야권통합을 제안하며 “이기심에 집착하지 말고…”라고 언급한 것도 안철수 공동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의 대권가도를 위해 야권의 패배를 유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더민주행을 결정하기 직전인 지난 1월에도“가능성이 당 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자기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안철수 의원의 생각 아니냐”고 발언, 창당이 대권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더민주를 탈당한 이들 대부분이 지도부 문제 때문에 탈당했지만 명분이 사라졌다며 탈당자들의 복귀를 촉구한 것 역시 국민의당으로서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당내 정리부터 하시길”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불쾌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안 대표는 "먼저 당내 정리부터 하라"며 "지금 이 시점에 그런 제안을 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민의당은 아무런 물밑 조율 없이 공식석상에서 야권통합을 제안한 것은 '보여주기식 쇼'이자 '국민의당 힘빼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당내 정치혁신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병호 의원 역시 “우리가 탈당하고 신당을 추진한 이유가 있다”며“지금 아무런 변화 없이 야권 통합을 한다는 건 과거에 총선·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더민주의 현역 의원 컷오프와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대해서도 “화장을 짙게 하고 있다”며“국민이 비판하는 부분을 화장으로 가리고 있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천정배 공동대표 등 야권 통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인사들이 있어 갑론을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지지율 하락과 지도부간 불협화음으로 내홍을 겪어온 국민의당이 야권통합 제안으로 한차례 더 흔들릴 전망이다.
당 내부적인 측면에서 야권통합 제안은 김종인 대표가 선대위 등 당 운영 방식과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과정에서 제기된 '독단' 논란을 해소하고, 당을 결집시킬 수 있는 카드다.
더민주 관계자는 “김 대표는 당에 올 때부터 총선승리 통해 정치지형을 바꿔야 우리 국민과 서민의 삶 나아진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며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한 리더십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與 “야권통합? 총선 망령 또 나오는 듯”
한편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야권 통합을 제의한 데 대해 '구태정치', '권력용 연대'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력 비판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통합을 하려면 왜 헤어졌는지 모르겠다”며“구태의 답습”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구태 정치가 또 살아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의총에서 “결국 총선 때마다 나오는 망령이 또 나오겠다”며“지난 총선 때도 한명숙 대표의 통합민주당과 이정희 대표의 통합진보당이 야권 통합을 했다”고 야권이 총선 때만 되면 통합에 나서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결국 좌파들이 대한민국 발전을 가로 막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필리버스터에 나온 분들을 기억하라. 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선거 때만 되면 불거지는 묻지마 연대와 야권 야합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야권의 야합은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시한 오직 선거만을 위한 '권력용 연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정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의 목표를 세우고, 그 기조에 맞춰 정책을 만드는 조직”이라며“그 정책을 바탕으로 그린 청사진으로 국민들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자 정도”라고 밝혔다.
아울러 “당의 고질적인 불륜정치가 이번에도 등장한다면 야당은 국민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꼼수가 아닌 정도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유의동 원내대변인 역시 “때마다 반복되는 야권통합논의는 더 이상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며“야권은 항상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을 반복해왔다”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야당이 정말로 백년을 바라보는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면 더 이상 선거용 승리에 급급한 무책임한 통합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며“더민주발(發) '뭉치면 산다'는 식의 급조된 야권통합은 국민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선거를 위한 통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