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협력업체와 부하직원에게 억대의 금품을 받고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민영진(58) 전 KT&G 사장 측이 재판에서 "시가 100만~200만원 상당의 시계는 뇌물이 아닌 기념품"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현용선) 심리로 열린 민 전 사장의 배임수재 및 뇌물공여 혐의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민 전 사장 측 변호인은 "시계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나 만찬 자리에서 참석자 전원에게 준 시가 100만~200만원의 기념품으로 생각했다"며 "자리에서 돌아와 쇼핑백을 노조위원장에게 그대로 건네줬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그러면서 "청탁을 받거나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민 전 사장은 배임수재에 대한 인식이나 의사가 전혀 없었고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 역시 부인한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 측은 "부정한 청탁이 없는 의례적 선물이라고 주장하지만 KT&G는 출범 당시부터 윤리선언을 하면서 5만원 이상의 향응과 금품은 회사에 신고하고 반환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민 전 사장은 6년 정도 KT&G 사장으로 재직하며 임직원들에게 윤리를 강조했음에도 해외에서 수천만원 상당의 시계를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또 "검찰은 2013년 KT&G 수사를 시작하면서 청주 연초제조창 매각 관련 뇌물공여 사건을 처음 수사했다"며 "당시 민 전 사장이 담배제조 공장 부지 매각과 관련해 알선업체를 통해 청주시 담당 공무원에게 6억6000만원 상당을 공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민 전 사장은 이날 법정에서 "너무 억울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랑스럽게 살진 못했어도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다"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 당해 참담하다. 잘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민 전 사장의 고가시계 '기념품' 발언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선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100만~200만원 상당의 기념품이라도 뇌물에 해당한다"며 "뇌물의 기준은 사회통념상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 뇌물이 아니라 단순히 기념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의 도덕적 해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 전 사장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협력업체와 직원, 해외 담배유통상 등으로부터 납품 편의와 인사 청탁 등을 명목으로 1억79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 2010년 청주시청과의 연초제조창 부지 매각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입장을 좁히지 못하자 용역업체 N사 강모씨를 통해 청주시청 공무원에게 6억원대의 뇌물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조사결과 민 전 사장은 인사 청탁과 함께 직원 이모(60)씨에게 4000만원 상당, 협력업체 두곳에서 납품 유지 대가로 각각 3000만원을 챙기는 등 모두 현금 1억원 상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2010년 러시아에서 중동의 담배유통상에게 79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받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민 전 사장의 추가 금품 수수 여부 등 여죄를 수사하기 위해 운전기사 유모씨와 KT&G 한 협력업체 대표 운전기사인 장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민 전 사장에 대한 첫 공판은 3월21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