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31일 발표한 '2016년 업무계획'에는 재벌 총수의 해외계열사 공시 의무 부과, 순환출자 관련 제재, 일감 몰아주기 제재 등 재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제민주화 성과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정부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캠프에서 핵심 공약을 주도했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최근 야권으로 이동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쟁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성적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 3년 동안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경제팀으로부터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갑자기 '경제민주화를 잘했다', '점수가 80점이다' 이런 얘기를 무엇 때문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와 공정위는 지난 18일 맞대응 성격의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경제민주화 핵심 개혁과제 20개 중 13개의 입법을 완료했다"며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의 실천"이라고 반박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은 '10인 10색'으로 다 다르다. 조세정의나 최저임금도 경제민주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초 대선 때 얘기했던 것을 중심으로 과제를 20개 만들었으니 정부는 그것을 가지고 평가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가져와서 아무 것도 안했다고 하면 좀 얘기가 틀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공정위의 올해 업무계획에는 경제민주화 관련 과제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롯데그룹 '왕자의 난' 이후 이슈화 된 재벌의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 지배 문제에도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재벌 총수에게 해외 계열사 현황 공시 의무를 부과해 해외 계열사를 통한 국내 계열사 소유지배 현황이 드러나도록 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2월 1일 롯데그룹의 해외 계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한다. 공정위는 롯데 측이 해외 계열사 지분 구조를 허위로 공시했다고 보고 제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등 지난해 순환출자 강화로 결론낸 합병에 대해서도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당초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두 합병이 순환출자 강화라는 판단을 내렸을 때 삼성과 현대차는 지분 처분 기한 유예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삼성은 3월1일, 현대차는 1월1일까지 지분을 처분해야 해 경영상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공정위는 두 그룹에 대해 예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순환출자를 자발적으로 해소하지 않아 법위반 행위가 발생할 경우 주식처분 명령 등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삼성은 아직 기한이 남아있고, 현대차의 경우 기한이 넘었기 때문에 1분기 중 심사보고서를 올려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의 내부거래 실태를 상시점검하고 법 위반 혐의가 높은 기업은 직권조사해 엄중 제재할 방침이다.
정 위원장은 "CJ를 포함해서 5개를 조사했는데 4개는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다"며 "1분기 중 심사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3년간 경제민주화 과제를 추진해 상당 부분 성과를 이뤘지만 여전히 일부 대기업집단의 불투명한 소유지배구조가 지속되고 있고 일부 불공정 거래 관행도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올 한 해 시장 감시기능 강화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경제민주화의 성과 체감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