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법원이 8000억원대 규모의 기업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효성그룹 조석래(81)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조 회장이 80세의 고령인데다, 과거 담낭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상 문제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와 상법 위반 혐의 중 2008년도 배당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또 조세포탈 혐의 가운데 해외 페이퍼컴퍼니(SPC)와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주식전환을 통한 혐의 등 일부도 무죄로 판단했다.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48) 사장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상운(64)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포탈세액의 합계가 1358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며 다수의 임직원이 동원돼 조직적·계획적으로 장기간 범행이 이뤄졌다"며 "양도소득세 및 종합소득세 포탈에 200명이 넘는 차명인과 400개가 넘는 차명증권계좌가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기업의 총수이자 전경련 회장 등을 지낸 조 회장이 경제에서 갖는 비중과 위치에 비춰 법질서 내 투명하고 정상적인 방법을 저버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사회적 지위에 비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계 분식이 탈세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부실자산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조 회장 측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영업이익만을 늘리기 위해 답습돼 온 회계분식 관행이 부실화된 회사 재무상태를 정상화한다는 명목 아래 또다른 회계분식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부실자산을 정리한다면서 1980년대부터 경영상태가 호전된 2012년까지 조세포탈과 회계분식을 반복하면서 운영해온 것은 그릇된 이윤추구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효성에 대한 경영권 및 지배권 유지 강화 수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효성은 회계분식을 통해 약 1238억원의 조세포탈 이익을 얻었고 회장이자 최대주주인 조 회장은 이를 직·간접적으로 향유했다"며 "개인적으로 차명주식을 통해 120억여원의 양도소득세 및 종합소득세를 포탈한 점에 비춰 실제 이득이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과 효성은 포탈한 세금 및 가산세 등을 사후적으로 모두 납부했고 국내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며 "80세 고령으로 2010년 담낭암 4기 진단을 받았고 4년 후 전립선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등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조현준 사장에 대해서는 "횡령금액을 전부 변제했고 피해자인 효성이 처벌을 원치 않고 있다"며 "사후적인 조치를 통해 주주 및 회사 채권자들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사라진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조 회장 측 변호인은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다만 조현준 사장에 대해서는 검토 후 항소할 계획을 밝혔다.
효성 측은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와 금융권의 강요에 효성물산과 합병해 떠안은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회계분식과 조세포탈이 불가피하게 발생했고 어떠한 개인적 이익을 취한 적도 없다"며 "법인세를 포탈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국가 세수가 감소되지 않은 점 등을 주장했지만 실형이 선고돼 안타깝다.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조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상법 위반 등이다. 혐의에 대한 액수는 회계분식 5010억원, 조세포탈 1506억원, 횡령 690억원, 배임 233억원, 위법한 배당 500억원으로 모두 7939억원에 달한다.
조 회장은 2003년부터 10여년간 89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37억원을 포탈하고 2007~2008년 효성의 회계처리를 조작해 주주 배당금 500억원을 불법으로 취득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국내외에서 임직원이나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수천억원대의 효성 및 화학섬유 제조업체 카프로의 주식을 사고팔아 1318억원의 주식 양도차익을 얻고 소득세 268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이밖에 해외 법인 자금 690억원을 횡령해 개인 빚이나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 채무 변제 등에 쓰고 자신이 관리하던 페이퍼컴퍼니가 효성 싱가포르 법인에 갚아야 할 채무를 전액 면제토록 지시해 회사 측에 233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있다.
장남 조 사장은 효성 법인자금 16억원을 횡령하고 조 회장으로부터 해외 비자금 157억원을 증여받아 증여세 70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편 조 회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부정맥이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는 2010년 수술했던 담낭암이 전립선암으로 전이돼 암치료차 입퇴원과 해외 출국을 반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