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자 직업병 논란과 관련해 백혈병 등 모든 혈액암과 20년전 퇴직자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전향적인 제안을 내놨다. 이는 반올림과 가족대책위원회 등의 요구와 원칙론에서 상당부분 부합하는 것이어서 양측의 줄다리기가 돌파구를 찾을 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16일 오후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2차 조정위원회에서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자에 대해 백혈병뿐 아니라 모든 혈액암을 보상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뇌종양과 유방암도 보상대상에 포함한다는 계획이다. 또 담당업무와 발병 시기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질병 종류에 관계없이 보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삼성전자는 "백혈병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혈액암을 보상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며 "이미 산업재해 승인 이력이 있는 뇌종양과 유방암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질병을 앓고 있는 근로자 가운데 담당직무와 재직기간, 퇴직과 발병시기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인과 관계를 따지지 않고 보상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퇴직 후 10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 다른 조건이 충족되면 퇴직 후 업무와 관계없이 보상 대상에 포함 될 수 있다.
삼성전자측은 "산재 신청자뿐 아니라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보상할 계획"이라며 "회사 발전에 기여한 데 대한 보답 차원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나 손해배상 신청에도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보상 대상자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삼성측은 퇴직후 10년 이내 발병한 경우 모두 대상에 포함시키고 20년 전 퇴직자, 즉 1996년 1월1일 이후 퇴직한 모든 직원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상금액에 관해서는 원칙적인 수준의 기준만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객관적 기준이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아 금액 책정에 어려움이 있다"며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측은 이밖에 산업안전 보건법에 근거해 자료보존 기간을 법정 의무 기간의 2배로 늘리고, 건강진단 결과표는 최장 30년간 보관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해물질 감독을 강화하고,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등 전문가로 구성된 보건관리 추진단을 구성해 종합진단을 실시하는 등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측의 이같은 제안은 가족대책위나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요구사항과 부합되는 부분들이 꽤 있다.
우선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등 9가지 요구사항을 제안했는데, 보상범위와 관련해 백혈병, 림프종 등 림프계 질환뿐만 아니라 뇌종양, 유방암, 혈액암, 생식기암 등 업무 관련성이 의심되는 모든 근로자를 보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발병시기는 현직 근로자는 근로기간에 제한 없이 보상하고 퇴직자의 경우 이전에 1년 이상 생산라인에서 근무한다는 조건하에 퇴직 후 12년 이내 발병자는 모두 보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상범위는 일반적인 손해배상에서 적용되는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가족들을 위한 특별손해까지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재발방지대책과 관련해선 삼성전자가 기금을 출연해 가칭 '근로자 건강재단'을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반올림의 경우 치료비뿐 아니라 진단비와 간병비 등 일체의 경비를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 가족들의 경제적 피해와 정신적 보상도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
보상 대상자 선정에 관해서는 협력업체를 포함해 3개월 이상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공장 생산라인에서 근무 중이거나 근무했던 노동자를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병시기는 재직중이거나 퇴직 후 20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 모두 보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상 질환은 모든 암과 전암성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 중증 질환과 불임·유산 등 생식보건문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이밖에도 삼성전자측의 구체적인 사과와 유해물질 정보공개, 종합진단 및 화학물질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다.
이렇듯 보상에 포함될 질병과 보상 대상 근로자의 근무연혁 등 핵심사안에 관해 세 당사자의 제안이 상당부분 근접함에 따라 조정위원회가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정위는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 반올림이 제시한 보상범위와 보상금 등을 바탕으로 추가 회의를 개최해 구체적인 조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