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정유업계의 올해 키워드는 '사업구조 혁신'이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정제마진이 감소하고, 재고평가손실을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의 적자(정유부문)를 기록하자, 기존의 사업구조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정유부문의 수익성을 강화하면서도,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대신 석유화학과 윤활유, 석유개발 사업을 강화하거나 고수익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개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결같이 '사업구조 혁신'을 강조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변동에 따라 정유부문의 실적 변동 폭도 크다"며 "이런 변동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리기 위해 정유부문에 치중돼 있는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신년사에서 "지금 생존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전환 과정'에 들어와 있다"며 "위기 대응 노력들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존조건 확보를 위한 사업구조∙수익구조∙재무구조 혁신과제를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을 들여다보며 '덧셈과 뺄셈'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경제성이 높은 사업은 강화하고, 그 반대의 사업은 축소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작업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12월 신설한 PI(Portfolio Innovation)실에서 진행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정유부문 의존도를 낮추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금까지 해온 신성장 사업의 육성에도 힘을 쏟는다. B&I실에서는 배터리 사업과 정보전자소재 사업(리튬이온전지 분리막 등)을 적극 추진한다. B&I실의 본래 명칭은 NBD(New Biz. Development)인데, 지난해 12월 조직개편 때 명칭이 변경됐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2013년 12월 베이징전공·베이징자동차와 중국 현지에 공동 설립한 합작법인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는 베이징 현지에 구축한 연 1만대 규모의 배터리 팩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2017년까지 생산라인을 2만대 규모로 증설하는 등 사업 규모를 확대해 나간다.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석유화학 분야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 사업구조 혁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GS칼텍스의 석유화학 부문을 보면, 파라자일렌(연간 생산능력 135만t), 벤젠(연간 생산능력 93만t), 혼합자일렌(연간 생산능력 35만t), 폴리프로필렌(연간 생산능력 18만t) 등이 있다.
파라자일렌(PX)의 경우 공급과잉이 심한 상태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많은 업체들이 PX 공장을 증설해 공급과잉을 겪고 있다"며 "공급이 과잉일 때는 업체들이 가동률을 조정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GS칼텍스는 올해 석유화학 분야의 사업구조를 최적화하는 작업을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분석된다.
또 GS칼텍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이오부탄올 및 탄소소재 복합섬유 개발 등 신사업육성에 나선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전체 사업에서 바이오부탄올 및 탄소소재 복합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점차 확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대표는 신년사에서 "대규모 정유·석유화학 복합설비 투자인 Residue Upgrading Complex & Olefin Downstream Complex(RUC & ODC)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회사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자"고 말했다.
RUC & ODC 프로젝트는 고도화 공정을 거쳐 값싼 잔사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성이 높은 제품 위주로 바꾼다는 의미다. 준공 시점은 2017년, 투자 규모는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에쓰오일의 제품 구성에서 고부가가치의 경질제품(휘발유, 경유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74%에서 77%로 늘어나고, 유황 함유량이 많은 값싼 중유는 12%에서 4%로 낮아진다.
또 현재 파라자일렌(PX) 71%, 올레핀8%, 벤젠 21%로 구성된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사업이 프로젝트 진행 후에는 올레핀37%, 벤젠16%, PX47%로 바뀐다. 상대적으로 많은 업체가 생산에 뛰어들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PX 생산 비율을 줄이고, 올레핀 생산 비율을 높여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도 신년사에서 "신규 사업들을 본궤도에 올려 하루빨리 최적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유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수익 사업으로 다각화하는데 적극적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정유사업은 매출의 93%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률이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4월 울산신항에 업계 최초로 상업용 유류 저장시설을 가동하면서 유류 저장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9월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SHELL)과 함께 연산 65만t의 윤활기유 공장을 준공, 윤활유 사업에도 진출했다.
또 현대오일뱅크는 업계 최초로 독일 카본블랙 업체와 합작해 2017년부터 카본블랙을 생산할 예정이다. 카본블랙은 타이어 등의 강도를 높이는 배합제나 프린터 잉크의 원료 등으로 사용된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와 합작 투자해 석유화학회사인 '현대케미칼'도 설립했다. 이곳에서 혼합자일렌(MX) 등을 생산, 석유화학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향후에도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신사업에 적극 진출해 정유부문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며 "다만 지금까지 벌려놓은 신규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