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상반기 최고 흥행작인 KBS 1TV 드라마 '정도전'은 남자들의 뜨거운 멜로였다. '정도전' 역의 조재현(49)을 비롯해 '하륜' 역의 이광기(45). '정몽주' 역의 임호(44)가 중심이었다.
세 남자가 하반기 연극 무대에서 같은 역을 맡아 다른 색깔로 부부 간의 애절한 멜로를 그린다. 12월12일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개막하는 연극 '민들에 바람되어'를 통해서다.
조재현이광기·임호는 죽은 아내 '오지영'의 무덤 앞에서 남편·아버지로서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돌아보는 '안중기' 역에 트리플캐스팅됐다.
이광기는 11일 오후 비발디파크홀에서 열린 '민들레 바람되어' 제작발표회에서 "안중기의 기본 내면은 따뜻한 사람"이라면서 "우리 셋다 철 없어 보이지만 속은 다 따뜻한 남자"라며 웃었다.
개성이 뚜렷한 만큼 각자 연기하는 안중기의 모습은 서로 다를 것이라고 했다. "연기하는 호흡이 다 다르죠. 아내를 맞이하는 것에서부터 다 다릅니다." 임호 역시 동의했다. "조재현, 이광기, 임호의 안중기를 봐야지 진정으로 '민들레 바람되어'를 봤다고 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웃었다.
2008년 대학로 공연브랜드 '연극열전2' 당시 초연한 연극으로 이번이 4번째 무대다. 초연부터 박춘근 작가와 김낙형 연출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조재현과 이광기는 이 작품에 이미 출연한 적이 있다. 임호는 첫 출연이다.
캐스팅은 이 연극을 제작한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한 조재현이 맡았다. 그는 유명 배우들을 대학로에 끌어들이는 솜씨가 뛰어나다. 드라마계의 톱배우 공효진을 설득해 다음달 연극 '리타'로 대학로에서 신고식을 치르게 했다. 임호는 '정도전'을 하면서 돈독해졌고 자연스레 '민들레 바람되어' 출연도 제의하게 됐다.
2011년 앙코르에 출연한 이광기는 다시 대본을 받았을 때 "살짝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2009년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도 전인데 죽음을 다룬 이야기라 "아내가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당신에게 왜 죽음과 관련된 대본이 오느냐'라고 했죠. 그래서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몰래 대본을 그냥 읽어봤어요. 근데 메시지가 좋고 이야기가 따뜻하더라고요. 부부 관계 회복의 내용이 있었죠. 회복은 몸엔 익숙한 단어지만 아직 마음과 영혼 쪽으로 낯선 단어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이 연극을 본 부부들은 끝나고 손을 잡고 가시더라고요. 그런 경험 때문에 다시 꼭 하고 싶었어요."
이광기와 임호는 '배우' 조재현과 '제작자' 조재현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이광기는 "조재현은 훌륭한 배우에요. '정도전' 촬영할 때 녹화에 들어가면 기존 조재현을 찾아볼 수 없죠. 훌륭한 배우입니다. 제작자로서 만난 조재현은 갑과 을이 분명하더라고요"라고 웃었다.
임호도 "촬영장에서는 밥도 술도 다 사주는 형인데 제작자로서는 조금 다르다"고 역시 웃었다. "어느날 연출님이 불을 끄고 연습하시더라고요. 형이 밝으니까 불을 끄라고 말씀하신 거죠. '정도전' 때 밥, 커피도 다 사주시던 터라 그런(절약에 철저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조재현을 높게 평가했다. 이광기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직까지 연극 판이 뮤지컬, 드라마, 영화에 비해 풍족하지 않으니까요. 사명감을 가지고 연극 문화를 위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배울 게 많죠"라고 치켜세웠다. "게다가 완성도 높은 작품에 출연 제의를 하시니, 안할 수가 없어요. 하하하."
조재현은 대학로에서 알아주는 제작자다. 2000년대 후반 연극열전 프로그래머로 나서 연극계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연극열전1'이 잘 됐는데 이 행사를 책임졌던 후배가 금전적으로 큰 빚을 졌더라고요. 좋은 작업을 하는 후배인데 말이죠. 그래서 (시즌1에 출연하던 배우로서)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 (제작에) 뛰어들었죠. 처음부터 제작자가 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극 약 50편을 제작한 그에게 '민들레 바람되어'는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다. 창작극으로서 초연 제작이 힘들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대학로에 흔치 않았던 중년 관객을 끌어모은 선두주자로 통한다. 초연 당시 처음 본 20~30대들의 입소문을 타고 그들의 부모들이 잇따라 관람했다. 서울 포함 전국 20개 도시를 돌며 550회 공연, 17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조재현은 지난해 말 DCF 대명문화공장을 세우면서 역시 자신과 같은 중년 세대가 찾을 수 있는 공연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1년이 지난 현재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DCF 대명문화공장 내 수현재씨어터 개관작으로 선보인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시작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성령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 '미스 프랑스', 이순재·신구·나문희 등 스타 원로배우들의 출연으로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 '황금연못'까지 이 공연장 무대에 오른 작품들은 중년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아직 공연 관람 문화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이 에티켓을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고민을 하고 있다. 공연 도중 전화를 받는 등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년 이상의 노년층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인 점 자체로 1차 숙제는 끝낸 것 같다고 했다.
"대학로가 10~20대들의 공연 문화 공간으로만 여겨져 아쉬웠죠. 앞으로도 많은 숙제를 해결해야겠지만 대중적인 연극에서 벗어나 중장년층과 마니아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성숙한 관객과 만나는 작업을 점차 해나갈 겁니다."
이번 '민들레 바람되어'에는 최근 최고 흥행 드라마였던 MBC TV '왔다! 장보리'에서 '보리 엄마'인 '조혜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황영희도 나온다. 그녀는 본래 극단 골목길 등에서 활약하며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2008년 초연 당시 '민들레 바람되어'에서 참견쟁이 할머니를 맡았고 이번에도 같은 역을 맡는다. '감초' 역의 대명사 이한우가 멋쟁이 할아버지 역으로 출연한다.
2015년 3월1일까지 볼 수 있다. 오지영 최희진·권진, 멋쟁이 할아버지 김상규, 참견쟁이 할머니 이지현. 러닝타임 90분. 4만4000~5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