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마왕' 신해철의 언변은 사망 직전까지 날카로웠다.
2일 밤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예능프로그램 '속사정 쌀롱' 제1회는 쾌감이 느껴지는 고인의 언변을 더는 듣지 못한다는 사실로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지난달 27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신해철이 생전 마지막으로 녹화한 방송프로그램이다. 10월9일 녹화했으나 방송을 앞두고 신해철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편성 여부가 불투명했다.
'속사정 쌀롱' 제작진은 이날 프로그램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고(故) 신해철의 마지막 방송 출연분을 유가족과 소속사 측의 입장을 반영해 어렵게 공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방송 여부를 놓고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고 신해철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와 영상을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팬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유가족분들의 소중한 뜻을 받아 어렵게 방송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전했다.
'원조 독설 연예인'인 신해철은 가수 겸 MC 윤종신, 문화평론가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 영화평론가 허지웅, 개그맨 장동민, 힙합그룹 '엠아이비(MIB)' 멤버 강남 등 입담으로 내로라하는 MC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1990년 데뷔 첫 무대에서 신해철이 피처링한 '떠나갈 친구에게'를 불렀다는 윤종신은 고인 덕분에 용기를 냈던 경험을 회상했다. 무대를 등지고 노래를 불러 '무대 공포증'이 생겼는데 신해철 덕분에 이를 해소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해철은 "전쟁터에서 죽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등 뒤에 칼이 꽂히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당시 윤종신과 신해철은 같은 매니지먼트사인 대영AV 소속이었다. 신해철이 윤종신보다 가수 데뷔가 2년 빨랐다.
다른 MC들이 자신의 독설가 이미지에 관해 묻자 "독설가는 아니다. 부드러운 말은 살과 같이 빨리 썩고, 독설은 뼈처럼 오래 남더라"고 답했다.
이날 주제는 '후광효과'였다. 신해철은 "제일 창피한 건 자기가 후광효과 덕분에 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모르는 것이다. 여우가 가는데 동물들이 다 길을 비켜서 으쓱했는데 알고 보니 그 뒤에 사자가 있었다는 동화도 있다"며 식견을 과시했다.
그래도 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아적인 기질은 여전했다. "데뷔 초 제작 프로듀서를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싫었어요. '나를 가르친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지'라고 생각했죠. 그들이 연예인을 '쓴다'고 말하는 표현도 받아들이기 싫었습니다"고 말했다.
신해철의 인간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었다. "줄리언 레넌 같은 경우는 아빠가 '비틀스' 출신인 존 레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후광효과로 피해를 보는 인물들에 대해 애정을 보였다.
백수로 지내는 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의 사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는 "운전하는 사람이 기름이 떨어졌을 때 보험사에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을 넣어주듯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복지"라면서 "충분한 사회, 환경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몰아세우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신해철은 방송 초반 자신을 소개하면서 "취미는 란제리 홈쇼핑 방송 보기"라면서 해맑게 웃었다. 방송 내내 그는 그렇게 웃고 또 웃었다.
'속사정 쌀롱'은 이날 마지막에 신해철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배경음악으로 네티즌들과 이 방송의 MC들이 고인에게 보내는 애도 글을 생전 사진과 함께 내보냈다.
한편, 신해철에 대한 부검은 3일 정오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한다.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시신 인도 시간은 10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