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기철 기자] 프로 데뷔 17년차 허윤자(35·삼성)가 '제2의 도전'을 다짐했다.
올해로 프로에서 17년째 뛰고 있는 그는 여자프로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선수다. 1998년 신세계에 입단해 이듬해부터 식스맨으로 코트에 섰다.
지난 시즌까지 줄곧 한 곳에서만 뛰었다. 2012년 신세계가 해체된 순간에도, 뒤이어 하나외환으로 바뀐 이후에도 종로구 청운동 체육관을 지켰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 직전까지 갔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지만 원 소속구단 하나외환은 새로운 팀 컬러를 이유로 허윤자를 전력에서 배제했다. 적지 않은 나이도 구단 입장에서는 걸림돌이었다.
타 구단과 접촉할 수 있는 2차 협상기간에도 역시 그를 찾는 구단은 없었다. 하나외환과의 3차 협상은 당연히 결렬됐다.
허윤자는 29일 "상당히 복잡한 심정이었고, 솔직히 하나외환에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면서도 "며칠 동안 힘들어 했지만 그냥 받아들였다. 많이 내려놓은 상태였다"고 기억했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술도 입에 대지 않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서 혼자 지냈다. 그래도 주위에서 끈을 놓지 말고, 잘 될 것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 서 힘이 났다"고 했다.
그러던 중 희소식을 접했다. WKBL이 이사회를 통해 FA 규정을 개정했다. 3차 협상에서 원 소속구단이 재계약할 의사가 없다고 결정한 선수는 아무런 조건 없이 타 구단과 계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용인 삼성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높이를 보강하고,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 줄 베테랑 빅맨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허윤자는 삼성과 계약기간 2년, 연봉 70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허윤자는 "이호근 감독님은 신세계에서 코치를 맡으실 때, 6년 가량 함께 했던 분이고, 내가 연차가 있다 보니 박정은 코치님이랑 이미선, 김계령 선수 등은 모두 잘 아는 사이였다"고 했다.
이호근 감독은 허윤자에게 "너 안 오면 죽는다"는 농담으로 복잡했던 허윤자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허윤자는 "원래 있었던 곳처럼 편안하다. 낯선 것도 없고, 많은 분들이 도와줘 이곳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김정은(27·하나외환)을 비롯해 아끼는 후배들과 이별하는 것이 아쉬웠다. 정들었던 체육관도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허윤자는 "(김)정은이를 생각하면 아이만 두고 집을 나온 엄마 같은 느낌이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하나외환과 경기를 하면 울컥할 것 같다. (신세계 시절에)함께 했던 정인교 감독님도 신한은행을 맡으시면서 적으로 만나게 됐는데 가족 같았던 하나외환 동료들을 적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허윤자는 최근 시범경기 2경기에 모두 출전해 15분 이상 출전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예전처럼 골밑에서의 궂은 일과 적극적인 수비·리바운드로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31경기에 출전해 평균 27분34초를 뛰며 7.8점 5.2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허윤자는 "농구공을 잡을 때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이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며 "처음 프로에 왔을 때의 느낌이다. 내가 삼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한해선 120%를 쏟아 붓겠다"고 했다.
이어 "처음 프로에 왔을 때, 신세계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에 우승이 없는데 프로 인생의 처음과 끝을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은 바람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매 순간 열심히 하자'는 좌우명처럼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허윤자는 다음달 3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삼성-우리은행의 경기를 통해 삼성 팬들에게 처음으로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