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인간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뇌의 용량은 10%, 만약 뇌의 기능을 100% 활용한다면?' 영화 '루시'는 뤼크 베송(55) 감독이 던지는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액션 SF다.
320만년 전 지구에 존재한 '루시'라는 이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손으로 물을 마시는 유인원의 모습 위로 '10억년 전 우리는 생명을 받았다.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깔린다. 베송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바의 핵심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루시(스칼릿 조핸슨)가 1주 사귄 남자친구 리처드로부터 정체불명의 가방을 미스터 장(최민식)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반강제적으로 가방을 전달하던 루시는 미스터 장에게 납치돼 정신을 잃고 만다.
정신을 차린 루시는 배의 한가운데가 절개돼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미스터 장은 루시의 배에 가방에 들어있던 파란색 합성물질인 CPH4를 저장한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 무사히 운반할 경우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제의한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어디론가 가게 된 루시는 폭력배에게 구타를 당하다가 뱃속에 저장된 CPH4가 터져 온몸으로 흡수된다. 그때부터 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힘을 갖게 된다.
비밀번호로 잠긴 가방을 열 때의 긴장감, 극악무도한 미스터 장의 살인, 루시를 위협하는 무기 등 극 초반 미스터 장과 루시의 대립으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면, 중반부터는 뇌의 확장과 동시에 화려한 볼거리가 재미를 선사한다. 단,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뇌의 용량 24%, 신체를 완벽히 통제하는 시점이다. 루시가 병원에서 엄마에게 전화해 "사람, 공기, 핏줄 속의 피의 흐름, 뇌, 중력, 내 모든 기억, 엄마 젖의 맛도 생생하게 느껴져"라고 울먹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의 향기가 난다. 하지만 점점 기계적으로 변해간다. 40%가 되면서 자기분열을 일으키면서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게 됐으며, 62%에 이르러서는 타인의 행동까지 통제한다. 80%를 넘어가면서 시공까지 넘나든다.
미스터 장을 향한 루시의 복수로 이어질 것 같은 영화는 뇌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뒷전으로 물러난다. 뇌를 확장하면서 인간의 본능을 잃어 가는 루시를 통해 베송 감독은 '루시는 인간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인간은 어디에서 생명을 부여받았나? 부여받은 생명으로는 무얼 하며 살고 있나?'
베송 감독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 하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다. '왜?' '어째서?'라고 의문을 품으면 이 영화는 끝이 없다. 인간이 뇌를 평균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만 본다면 상업적으로 즐길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루시와 대립각을 형성하는 최민식의 연기는 자긍심마저 느끼게 한다. 외형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말을 사용해서일까, 최민식의 연기는 할리우드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다. 적은 분량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온몸을 서늘하게 만든다.
섹시한 줄만 알았던 조핸슨의 연기도 변화무쌍하다. 특히 온몸에 합성물질이 퍼질 때, 공중에서 몸부림칠 때의 표정은 엄지를 치켜들게 만든다. 뇌 연구가이자 루시의 조력자 모건 프리먼의 무덤덤한 표정도 극과 잘 어울린다.
인간의 뇌가 100%에 도달했을 때의 변화를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겠다. 다소 맥 빠지는 결말이 아쉽다. 3일 개봉, 90분,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