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기철 기자] 한국 남자농구가 16년 만에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아프리카 챔피언 앙골라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유재학(51) 감독이 이끄는 남자 농구대표팀은 30일(한국시간)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그란 카나리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4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D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초반 극심한 난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앙골라에 69-80으로 패했다.
한국의 초반 경기력은 예상하지 못할 만큼 부진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이 맞는지 의문이 들 수준이었다. 스스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슛은 번번이 림을 외면했다. 노마크나 다름없는 쉬운 골밑슛마저 실패했다. 전반에 시도한 야투 34개 중 림을 통과한 건 6개에 불과하다.
어이없는 패스와 움직임으로 공격권을 넘겨주는 장면도 허다했다. 전반에 18-36, 더블스코어로 밀린 배경이다.
시쳇말로 "얼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베테랑 김주성(35·동부), 양동근(33·모비스)부터 에이스 조성민(31·KT)까지 모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유 감독은 "전반이 아쉬웠다. 이렇게까지 경기력이 안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경기 감각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성민도 "경기 전 몸을 풀 때와는 달리 막상 코트에 들어가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했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문태종(39·LG), 조성민의 외곽포와 김선형(26·SK)을 중심으로 한 빠른 공수전환으로 주도권을 잡은 3쿼터부터 반격했지만 끝내 초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초반 기싸움이 분수령이었다.
한국은 이날 경기가 지난달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 이후 처음 갖는 실전이었다. FIBA도 "한국은 앙골라와의 1차전이 한 달 만에 치르는 경기"라고 소개했다.
경쟁국들이 세계 각국을 돌며 평가전을 치르고, 일찌감치 스페인에 입성해 전술 완성도를 끌어올릴 때 한국은 진천선수촌에서 주축들이 빠진 프로 구단을 상대했다. 정상적인 실전 감각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유 감독은 "코트 밸런스가 잡혀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타이밍에 3점슛을 던져야 하는데 전반에 선수들의 위치 선정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무대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번이 1998년 그리스 대회 이후 16년 만의 세계대회 출전이다.
당시 대회에 출전했던 이는 김주성이 유일하다. 김주성마저 당시 기억이 거의 없을 만큼 세계무대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대표팀이다.
사실 앙골라의 경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턴오버의 경우 한국(9개)보다 2배 가까이 많은 16개를 범했다.
국제 경험이 풍부한 허재(49) KCC 감독은 "아프리카 선수들의 슛이나 패스, 연습하는 것을 보면 정말 엉성하다. 붙어 봐도 잘한다는 느낌을 크게 받진 못했다"면서도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항상 우리가 끌려가는 흐름이었다"고 기억했다. 따져보면 이번에도 유사했다.
남다른 규모의 체육관과 시설·분위기,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주는 무게감, 첫 경험에 대한 중압감 등도 월드컵을 처음 경험하는 한국 선수들의 몸을 무겁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세계랭킹 31위 한국은 리투아니아(4위), 호주(9위), 슬로베니아(13위), 멕시코(24위)와의 대결을 남겨뒀다. 만만한 상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