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밴드 'YB'의 보컬 윤도현(42)이 익숙한 기타를 잡고 무대 위에 섰다. 배우 전미도(32)는 최초로 관객들을 마주한 채 피아노 앞에 앉았다. 뮤지컬배우 이창희(34)와 박지연(26)가 관객들 앞에서 기타를 잡고 피아노 위에 손을 얹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밴드 멤버로서 무대 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라이선스로 한국 초연을 앞둔 뮤지컬 '원스'의 장면 연출을 위해서다.
실제 연인이자 프로젝트 그룹 '스웰 시즌'으로 함께 활약한 뮤지션 글렌 한사드(43)와 마르케타 잉글로바(26)가 주연한 동명 영화를 뮤지컬로 옮겼다. 2011년 말 초연, 2012년 6월 뮤지컬·연극계의 아카데미로 통하는 제66회 토니상에서 최우수뮤지컬상을 비롯해 8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 실연 당한 거리의 기타리스트와 체코 출신으로 남편과 별거 중인 피아니스트가 음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폴링 슬로리(Falling Slowly)' 등의 넘버와 달달한 러브 스토리로 인기를 끌었다. 이날 배우들은 '폴링 슬로리' 등을 기타·피아노로 연주하며 들려줬다.
'원스'는 배우들이 악기까지 직접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기존의 뮤지컬 대부분은 노래와 춤, 연기 3요소가 주축이다. '원스'는 그러나 배우들이 여기에 악기까지 직접 연주한다. 그간 국내에서 선보였던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는 '모비딕' 정도가 있지만 '원스'는 그 정도가 더 세다.
윤도현·전미도·이창희·박지연은 뮤지컬계에서 캐스팅 제의가 쏟아지는 배우들임에도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을 포함해 5개월이나 오디션을 치렀다. 이들을 비롯한 14명의 주조연 배우와 4명의 언더스터디(대역배우)를 뽑았다. 윤도현은 생애 첫 오디션이었다.
한사드가 맡은 '가이' 역의 윤도현은 "오디션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워낙 하고 싶은 작품이라 기꺼이 오디션에 임했어요. 음악하고 삶을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 비슷했거든요"라면서 "참 떨리더라고요"라며 웃었다.
평생 기타와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가이 역에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내로라하는 기타 실력을 자랑함에도 '기타 레슨을 받고 있다.
"기타 레슨을 해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배우고 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기타가 참 어렵거든요. 저도 기타를 많이 쳤는데 첫날 레슨을 받는데 모르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제 음악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고요. '오픈 튜닝'(전체 줄의 개방음을 울렸을 때 하나의 완벽한 코드가 되는 튜닝)도 처음 해봤어요."
1994년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데뷔한 윤도현은 1995년 극단 학전의 록뮤지컬 '개똥이'로 뮤지컬에 처음 출연했다. 이후 '헤드윅' '광화문연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원스'는 기존 뮤지컬보다 관객들과 활발한 소통이 이뤄질 것 같다는 기대다. "뮤지컬은 정해진 룰 안에서 집중해서 작품을 보여주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면서 "우리 공연은 관객들과 소통이 많다. '원스' 역시 그런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윤도현은 데뷔 전 무명 포크그룹 '종이연' 멤버로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대중에게는 '샤우팅 창법'으로 각인된 록 뮤지션 이미지다. '원스'에서는 어쿠스틱 위주의 음악을 들려준다. 솔로로는 5년 만인 9월16일 발표하는 프로젝트 미니앨범 '노래하는 윤도현' 역시 어쿠스틱 음악으로 채워진다. 9월에는 파주 포크페스티벌에도 나온다.
"저도 몰랐는데 제가 가진 이미지가 강하더라고요. '윤도현'하면 시끄러운 음악을 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서요. 워낙 밴드 생활을 오래 해서 하드해진 것 같기도 하죠. 포크그룹 '종이연'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제 목소리에 한계가 오기 전에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동안 어쿠스틱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다음달에 어쿠스틱 앨범을 내고 올해 말에 '원스'를 하게 되니까 저에게는 좋은 기회죠. 서정적이면서 감성적인 음악을 해볼 기회 같아요."
이창희가 윤도현과 함께 가이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그는 "'원스' 가이 역을 할 사람은 윤도현 선배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님이 캐스팅됐고 내가 놀랍게도 기타로 같은 곡을 치게 됐다"면서 "선배님 앞에서 연주할 때 너무 떨리더라"고 털어놓았다.
오디션 기간이 혹독해서 지옥 같았다고 너스레를 떤 이창희는 본래 가수다. 1990년대 후반 '애국심'으로 활약한 아이돌 그룹 'OPPA' 출신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을 불태웠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고, 좌절한 날도 많았어요. 그러다 뮤지컬을 하게 됐고 또 다시 음악을 하는 뮤지컬을 하게 됐죠. 선택을 굳이 했다기보다는 가다보니 도달한 역 같아요. 너무나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미도와 박지연이 걸 역을 나눠 맡는다. 연극과 뮤지컬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전미도는 '원스'를 위해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제게는 연극이 고향 같아서 뮤지컬에서 노래를 부를 때 항상 떨렸어요. '원스'를 연습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떨림은 사라졌는데 피아노를 칠 때 떨림이 심해여"라며 겸연쩍어 했다. "오늘 관객들 앞에서 처음 첬는데 마음은 '괜찮다 괜찮다'하는데 손가락이 떨리더라고요. 평소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원스'를 하면서 이뤄지게 됐어요"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고스트'로 뮤지컬계 가장 떠오르는 배우인 박지연은 학창시절 밴드 보컬로 활약하는 등 원래 '음악하는 것이 꿈'이었다. "'고스트'도 음악이 팝적으로 강했고, 장르도 제게 잘 맞았지만 특히 '원스'는 영화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대본도 소장하고 있었어요. 마니아처럼 좋아하는 작품이었죠. 연습하는 과정에서 다 같이 합주하는 순간이 너무 힘들어요. 그건데 제일 중요한 건은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 벌써 가장 애착이 가요."
'원스'에서 또 힘든 이는 김문정(43) 국내협력 음악감독이다. 보통 뮤지컬처럼 오케스트라가 없기 때문에 이를 지휘하는 역을 맡지 않는다. "노래와 연기와 춤을 하고 악기까지 연주할 수 있는 배우를 뽑은 것이 아니라, 악기를 기본으로 연주할 수 있고 거기에 노래와 연기와 춤을 할 수 있는 배우를 뽑았어요. 단순히 악기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와 함께 춤을 추고 연기를 해야하고 감성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죠. 정기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언더스터디 배우는 어느 배우가 갑자기 빠질 지 모르니 최소 여섯개의 악기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버라이어티한 뮤지컬은 많은데 '원스'처럼 음악적인 깊이가 있는 뮤지컬은 드물 겁니다."
황현정(42) 국내협력 안무가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처럼 화려하거나 근사한 군무는 아니에요. 발을 구르거나 어깨를 흔드는 등 다소 원시적"이라면서도 "문제는 기타리스트 뿐 아니라 첼리스트마저도 가슴에 악기를 매달고 춤을 추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점이죠. 배우들이 고생할 것 같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감동 있는 움직임이 나올 것 같아요"라고 기대했다.
국내협력 연출을 맡은 김태훈(40)씨는 아일랜드 더블린이 배경이나 한국과 감성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공감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믿는다. 다만 "'폴링 슬로리' 등의 넘버를 한국 관객들이 영어로만 들어와서 한국말로 불렀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 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아일랜드로 넘어온 체코 이민자들의 유머도 있어 그런 부분을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한국적으로 풀어내려고도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 연출은 연극 '레드' 등으로 주목 받았다. "'원스'는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에서 새로운 것을 꺼내든다"고 귀띔했다.
'원스'는 이번 무대로 아시아는 물론, 비영어권에서도 처음으로 공연한다. 애초 국내 대형 뮤지컬 컴퍼니 사이에서 라이선스 경쟁이 치열했던 작품이다. 신시컴퍼니는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박명성(51) 신시컴퍼니 대표는 "한국의 모든 프로듀서들이 한다는 소문이 나서 라이선스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혈투를 벌여가며 라이선스료를 올리는 것은 거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라고 전했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뉴욕에서 신시는 왜 관심 없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신시가 연극을 꾸준히 해온 점을 보고요."
2012년 연극 '블랙워치'로 내한한 영국의 연출가 존 티파니(43)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이다. 그는 올해 초 내한해 음악감독 마틴 로와 박명성 대표, 김문정 음악감독과 함께 오디션을 치렀다.
'원스'는 12월14일부터 2015년 3월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 뮤지컬의 또 다른 특징은 술집이 배경인데 관객들이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가 바에서 음료도 마시고 배우들이 선보이는 즉흥 연주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CJ토월극장은 이런 점에서 오리지널 제작진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다. 역시 오디션을 치른 강윤석, 강수장, 임진웅, 이정수, 배현성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