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재욱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탄소 배출권거래제가 계획대로 실시될 경우 기업규모에 따라 많게는 조 단위의 추가비용이 예상, 국내 투자·고용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10일 주장했다.
특히 기업들의 ▲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위기기업 경영악화 ▲국내 사업장의 생산 제약 ▲신기술 개발 및 신시장 선점 지연 등이 우려되고 있어 시행 시기를 연기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한 반도체업체는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기간(2015~2017년)동안 부담예상액을 자체 분석한 결과, 최대 약 6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나라와 외국에 생산기지가 있는 이 반도체 기업은 배출권 부담비용으로 국내 생산량 조정을 고심하고 있다. 해외 사업장은 배출권거래제 미시행 국가여서 국내 사업장과 제품원가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업체의 관계자는 "가격이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시장에서 이는 큰 부담"이라며 "미국과 중국 등 해외 경쟁국은 온실가스 관련 규제도 없는데다 투자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국내 투자가 매우 제한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등에 사업장을 확충한 한 디스플레이 업체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자체분석 결과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중국 경쟁업체의 제품 판매가격이 비슷해질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 1차 계획기간 동안 약 6000억원의 배출권 비용부담으로 기존 LCD 생산면적 1㎡당 7000원이나 났던 중국 기업과의 가격 차이는 약 300원 가량으로 좁혀질 것으로 우려됐다.
특히 이 업체는 향후 국내 생산제품의 가격우위 확보가 어려워진다면 중국으로 생산기반 이전이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디스플레이 공장 신설에 투자되는 3~4조원 가량의 투자금액이 고스란히 다른 나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어 대응이 시급하다.
철강업체 중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가진 2개 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공정 특성 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1차 계획기간 동안 2개 기업 배출권 비용부담 총합이 최대 2조800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이 심해 배출권 비용으로 인한 가격 인상분을 철강재 가격에 전가할 수 없어 '사면초가'인 상황. 또 올해 철강업 조강생산 예상물량은 7200만톤이나, 정부의 할당계획안에 맞춰 생산한다면 2015년 이후에는 연간 6500만톤 이상은 생산이 불가한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에 부족한 국내 생산물량은 경쟁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국내 철강업만 고사될 가능성이 우려가 높다는 주장이다.
특히 업체 중 한 곳은 8000억 규모의 신규투자를 추진 중에 있으나,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신규사업의 경제성 확보가 우려되고 있다. 또 매년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더 이상의 신규투자사업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생산량을 확대하는 일도 가시밭길이다.
경영위기에서 최근 벗어나고 있는 한 자동차 기업은 가동률을 높여 생산량을 약 50% 이상 확대하려 하나 그만큼 배출권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고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사양 업체는 배출권 판매로 불로소득을 얻는 반면, 성장 업체는 엄청난 배출권 구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기술 개발 및 신시장 선점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한 화학섬유기업은 탄소섬유, 슈퍼섬유 등 신소재를 통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신소재 관련 제품군은 기존 섬유제품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높아 생산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해 배출권거래제가 큰 부담이다.
설상가상으로 원가가 높은 신소재의 특성 상, 원가절감이 제품상용화의 핵심이지만 배출권 비용으로 상용화가 더 지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기업 A사의 경우 친환경차 개발에 배출권 비용을 내야 한다. 친환경차 개발을 위해 신축할 연구소 건물 약 10개동과 신규 시험장비 도입으로 전력사용량이 증가해 간접배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A사는 1차 계획기간 동안 최대 250억여원까지 배출권 부담비용을 낼 수도 있다. 특히 간접배출의 경우, 전기시설의 신·증설은 인정받기가 어려워 예비분을 활용해 부담을 줄이려 해도 힘든 상황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배출권거래제는 기업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또는 조 단위의 추가비용이 예상되고 있어 국내 투자·고용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특히 경영위기 기업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경제팀이 출범돼 경제 재도약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를 연기하거나 과소 산정된 할당량을 재검토해 국내 투자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