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뮤지컬계 블루칩 조승우(34)와 김준수(27)가 같은 배역에 더블캐스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순재(79)와 신구(78)가 연극 '황금연못'의 주인공 '노만 세이어 주니어'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여러 편의 연극에 출연한 이순재와 신구는 이미 연극계에서도 스타다. 이순재는 '사랑별곡', 신구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두 대배우 모두 최근 출연한 연극을 잇따라 매진시키며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함께 나와 인기를 누린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연기로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은 물론 드라마, 영화, 어느 장르에서도 함께 연기하지 않았다. '황금연못' 역시 같이 무대에 서는 건 아니지만 한 작품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순재는 "신구 선생과 내가 표현하는 것의 차이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면서 "'햄릿'은 아마 1만명 넘게 연기했을 텐데 모두 동일한 햄릿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것에 의미를 두고 지켜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신구 역시 "순재 형님과 똑같다면 굳이 출연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라고 동의했다. "(라이벌 의식 같은) 그런 거 없죠. 어차피 색깔대로 표현될 것"이라는 편한 마음이다. 한 역에 더블캐스팅은 처음이라는 그는 "그간 더블캐스팅은 물론 교차 출연도 없었는데 아직은 얼떨떨하고 약간의 혼란이 있어요"라면서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199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의 출세작이다. 1979년 초연한 뒤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토니상을 받았다. 1981년 할리우드 스타 헨리 폰다(1905~1982)와 캐서린 헵번(1907~2003) 주연 영화로도 옮겨져 제54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여러 영화제에서 17개 부문 수상, 20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꿈 같은 청춘은 어느새 지나가고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낀 '노만', 그의 독설을 묵묵히 받아주며 지탱해 주는 아내 '에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고집쟁이 외동딸 '첼시'와 그녀의 남자친구 '빌'과 꼬마아들 '빌리'. 이들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삶의 철학과 가족의 사랑을 그린다.
이순재와 신구는 은퇴한 대학교수로 고집이 세고 독설과 농담을 일삼는 노만을 연기한다. 알고 보면 마음 약하고 귀여운 할아버지다. 특히 이순재는 극중 80세의 생일을 맞는 노만과 나이도 같다.
까다로운 남편을 받아주는 따뜻한 성품의 에셀은 나문희(73)와 성병숙(59)이 나눠 연기한다. 나문희는 MBC TV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8년 만에 이순재와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이순재는 "예전에도 몇 번 한 작품에 출연했는데 '황금연못'에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처럼 (부부로) 조화를 이루게 됐어요. 있기만 해도 든든합니다"며 흐믓해했다. 나문희는 "덩치가 커서 그렇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헵번과의 비교에 대해 나문희는 "감히 그럴 수는 없다"면서 "우리 한국 엄마에 초점을 맞춰서 해보려고 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황금연못'에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따로 살아온 고집쟁이 외동딸 첼시의 예를 들며 "저도 영감하고 딸이 셋이나 있어요. 편안하게 우리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바랐다.
대학로 연극의 주관객층은 젊은이다. '황금연못'은 얼핏 보면 젊은이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상성의 연극이라서 극에 큰 기복이 없어요. 지루할 수 있을 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런 부분이 아기자기하면서 재미있게 넘어갑니다. 나이든 사람이 나온다고 흥행이 안 되라는 법이 없어요. 신구와 손숙이 나온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객석이 꽉꽉 찼죠. 그런 전례가 있으니 우리도 잘만 하면, 젊은 관객들도 많이 들 수 있을 겁니다."(이순재)
이순재와 신구는 최근 연극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역을 주로 맡았다. '황금연못'의 노만 역시 황혼의 남자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도 끊임 없이 삶에 대한 애착을 지니는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리죠. 실제 노인들의 세계와 비슷합니다."(이순재)
"노만은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하죠.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안은 채 죽음을 앞둔 모습이 제 모습과 비슷해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순재 형님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항상 그 문제(죽음)를 두고 고민합니다. 5분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노만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시로 생각이 들어요. 우리 문제구나라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죠."(신구)
어느 촬영장이나 무대를 가도 나이로서 밀리지 않던 성병숙은 '황금연못'에서 막내가 됐다. "막내가 참 편해요. 선생님들이 봐주시는 것도 많고요. 실수도 많이 하는 천둥벌거숭이인데 모두 잘 챙겨주시죠. 남편 두 분이 너무나 다르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한분은 직진(이순재), 한분은 회오리(신구)예요. 호호호. 두 분이 무대 위에서 너무 달라서 노만을 두번 봐야 할 거예요."
네 배우는 나이가 들어 종종 체력이 달린다고 입을 모아 웃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품에 출연하다 보면 초현실적이면서 비상식적인 경우가 있어 스스로도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로서 이를 순화시켜서 대중을 이해시키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크죠. 연기라는 본질은 연극이랑 영화랑 같아요. 연극은 그런데 관객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 매력입니다."(이순재)
"연극은 땅에 발이 잘 닿아야 해요. 기운이 있어야 하고 호흡도 좋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들죠. 그 만큼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면 관객들과의 호흡도 좋아지고 스스로의 힘도 많이 좋아져요."(나문희)
그렇게 숱한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면 떨린다. 나문희는 "아직도 무대가 떨려요. 이제는 책임감이 생겨 긴장이 더 되죠"라고 털어놓았다. 신구도 "나이에 관계 없이 떨려요. 항상 새로운 관객 앞에 서니까요"라고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긴장이 없으면 연극 자체가 지루해질 겁니다"라며 눈을 빛냈다.
'황금연못'은 9월19일부터 11월23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볼 수 있다. TV 드라마 '토지'의 이종학씨가 연출한다. '세 자매'(2013) '일곱집매'(2013)의 문삼화씨가 번역을 맡았다. 이도엽, 우미화, 이주원, 홍시로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