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한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한층 내실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관계의 박 대통령을 위해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오는 3~4일 이틀간 한국만을 단독 방문하고 북한보다 우리나라를 먼저 찾는 등 그동안의 관례를 깬 정상외교에 나선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북한 핵문제에 대한 공조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공동대응에 있어 양국 정상이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강도가 어느정도에 달할 지 주목된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시 주석의 방한을 지렛대로 삼아 양국 기업인들 간의 교류 협력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실사구시’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지난해 3월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이래 첫 방한이지만 여로모로 '파격'에 가깝다. 시 주석이 취임 후 총 여섯 차례 외국을 방문했지만 다른 나라를 들르지 않고 1개 국가만을 단독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 우선 그렇다. 또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도 이번이 최초다. 1992년 수교 후 장쩌민(1995년 11월)·후진타오(2005년 11월, 2008년 8월) 등 역대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모두 북한을 먼저 방문한 뒤 이뤄졌다.
취임 후 네 차례의 방한 모두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없이 '홀몸'이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첫 방한부터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동행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지난해 6월 국빈방중과 같은 해 10월 APEC 정상회의(발리), 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헤이그) 등에 이어 벌써 네번째다.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다자회의를 계기로 환담을 나눈 것까지 더하면 다섯번째 회동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미국에 이어 일본을 찾던 관례를 깨고 중국을 먼저 방문했던 것과 맞물려 부쩍 가까워진 '한·중 밀월관계'를 짐작케 한다.
그 연장선에서 양국은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2008년 설정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는 공동문건을 채택키로 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일 브리핑에서“한·중 양국은 현재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내실있게 발전시켜 나간다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며“양자관계의 질적인 발전을 위한 추진 동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北核공조…'북한 비핵화' 명시여부 관심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올 의제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핵개발을 비롯한 북한 문제다. 주 수석은“북핵문제에 있어서는 한·중간 북핵불용과 북한의 비핵화 목표의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 추진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협력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현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시 주석이 전통적 혈맹국인 북한보다 우리나라를 먼저 찾는 것 자체만으로도 북한에는 적지 않은 압박인 동시에 ‘북핵불용’과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중국의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란 평가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독일 드레스덴공과대학 연설을 통해 제안한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의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시 주석의 지지 선언도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양국 정상이 채택할 공동문건에는 북핵불용의 원칙을 어떤 식으로 명기할지를 놓고 한국과 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원하는 반면 중국 측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원하고 있어서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6월 정상회담 뒤 채택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도 "양측은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안정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며 '북핵'을 명시하는 대신 '유관 핵무기'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한다”,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에 대해서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말해 북핵 문제에 있어 한 단계 진일보한 입장을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번 공동성명에도 그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재개를 원하고 있는 6자회담 문제도 공동성명에 담길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도 지난 3월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당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이 있고 북한 핵능력 고도화 차단의 보장이 있다면 대화 재개와 관련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 재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 6자회담은 의미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 만큼 북핵 반대 관련 문구의 명시 여부와 맞물려 물밑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日우경화 대응 공조 여부 주목
일본의 노골적인 우경화 움직임에 대한 한·중 간 공조 여부도 주목 대상이다.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 흔들기에 이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한 헌법 해석 변경을 각의에서 결정하면서 동북아 외교정세가 '한·중 대(對) 일본' 구도의 전선으로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 수석은“양측은 동북아 지역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을 위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만 했을 뿐 일본 이슈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국 정상이 회담 테이블에 동북아 정세문제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이 경우 자연스럽게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등이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지난 1일 시 주석 방한 관련 기자회견에서 "중·한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국주의의 피해자로 일본 역사 문제에 대해 공통적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자연스럽게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공동선언문에는 명시하지 않더라도 정상회담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주변국과의 신뢰회복을 위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줄 것을 촉구할 것을 보인다.
◆한·중 FTA 돌파구 마련 관심
경제분야에서는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중 FTA 협상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해 6월 정상회담에서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한·중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조속히 모델리티 협상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의 협상에 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국간 입장차로 지지부진했던 한·중 FTA는 이후 여섯 차례의 협상이 더 열려 11차 협상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하지만 최대쟁점인 농수산물 등의 개방 수위를 놓고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이번에 다시 한번 한·중 FT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의지를 표명한다면 연내 타결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또 시 주석의 한국 방문에 대기업 CEO를 비롯한 중국 기업인 200명이 경제사절단으로 대거 동행하면서 한국과 중국 기업간 교류의 큰 장이 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은 한·중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경제통상협력포험'에 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기업 전시회도 둘러볼 예정이다. 이밖에 양국은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10여개의 협력 문건에 서명하는 등 실질협력 강화를 위한 논의도 나눌 예정이다.
실질협력 관련 이슈는 ▲양국 국민에 대한 영사보호 강화 협정 ▲사건사고 또는 재난시 긴급 구조·지원 협력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포함한 환경 협력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문화교류회의 개최 ▲중국어-한국어 교사 파견 교류 ▲한·중 청년지도자 포럼 정례 개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