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서 재가 여부를 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 제출할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안 재가를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서 돌아온 뒤 검토키로 함에 따라 이르면 주말께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날 오전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순방 뒤에)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 재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데서 변화된 게 없다”며 “(문 후보자와 관련해) 특별한 움직임으로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도 이날 오전 출근길에서“조용히 내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면서도 향후 거취와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과 문 후보자 양자 중 어느 쪽도 ‘결단’이라 할 만한 것을 내놓지 않으면서 지난 10일 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2주 가까이 ‘인사정국’이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우선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해소될 것을 기다리면서 임명동의안 재가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이는 곧 문 후보자의 청문회행(行)을 강행하겠다는 것인데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자 지명을 계기로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추월한 상황인데다 7·30 재보선을 앞둔 여권내에서까지 ‘청문회 불가론’기류까지 강해 청문회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는 시나리오인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기다리는 중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박 대통령이 당장 지명철회에 나설 수도 있지만 양쪽 모두 감내해야 할 내상이 만만치 않아 문 후보자에게 거취를 결정할 시간을 줬다는 것이다.
지명철회는 청와대 인사검증 부실 논란으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박 대통령 스스로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에 가장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뒷말이 무성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까지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룬 이유로도 추측할 수 있다.
문 후보자 입장에서는 해명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하는 셈이어서 조용히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문 후보자의 지지자를 비롯한 일부 보수층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침묵은 곧 문 후보자에게 ‘명예회복’의 시간을 준 것이며 청와대는 정중동의 자세로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설득하는 ‘물밑 접촉’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후보자도 최근 자신의 문제로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만큼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 낙인’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한 뒤 자진사퇴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문 후보자가 이날 ‘자진사퇴 의사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은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답한 것은 여전히 ‘버티기 모드’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청와대의 설득 작업이 실패했다는 의미로 ‘침묵 속의 줄다리기’가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문 후보자가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내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은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의중을 확인할 때까지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일각에서는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스스로 지명철회를 요청한 전효숙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처럼 문 후보자가 지명철회를 요청하면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거취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당시 헌법재판관에서 사퇴한 전 전 후보자의 경우 헌재소장을 헌법재판관 중 임명토록 한 절차를 어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문 후보자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요지의 언급을 한 바 있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