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이건희 회장의 입원이 10일째에 접어들면서 삼성그룹은 긴박했던 지난주와는 달리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21일 '수요 사장단 회의'도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회의에 참석한 사장단은 민동권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고객의 마음을 얻는 서비스 혁신 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이 회장의 입원소식이 외부로 흘러나온 지난 11일부터 10여일간 삼성그룹은 수요사장단 회의, 화재대피훈련, 채용박람회 등 당초 예정했던 공식 일정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
그룹의 핵심축인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 계열사들이 '시스템 경영' 체제 아래 '흔들림 없는' 기업 이미지 구축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14일에는 최대 '난제'였던 반도체 근로자 백혈병 논란과 관련, 처음으로 공식사과와 함께 사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일종의 파격적인 결단도 내렸다.
다만 이 회장의 입원기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는 긴박한 움직임이 오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 회장의 입원이 길어지며 공백상태가 장기화되지 않겠느냐"며 "삼성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3세 그룹 경영 체제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고 큰 작업들은 거의 끝난 것으로 안다. 나머지 작업들을 서둘러 마치기 위해 이제부터 정신없이 밀어붙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 중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속도가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여러 갈래로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지주사체제 전환이다. 증권가에서는 세부적인 의견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 숨가쁜 승계작업의 최종 종착지는 지주사 전환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현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이 큰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건희 오너 일가의 고민 중 하나는 삼성전자 등 핵심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이 낮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미 지배력이 확고한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 미만에 불과하다. 만약 상속으로 지분율이 일부 상실된다면 이건희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장선상에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0.76%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남매에게 상속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지분으로 현물 납입한다면 지분은 반으로 줄게 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지분 19.3%를 갖고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최대주주이자 금융지주회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문제가 된다. 개정안은 비은행지주사가 자회사로 비금융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지주회사가 되면 제조사인 삼성전자 지분(7.6%)의 상당 부분을 처분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그룹의 핵심사업이나, 현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이 17.66%에 불과, 지배력이 취약한 상황이다. 여기다 삼성생명의 지분까지 줄어들면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후, 지주사와 에버랜드를 합병하는 '삼성전자홀딩스'를 만드는 방안과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삼성전자홀딩스를 각각 만든 뒤 모두 합치는 통합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상속이 이뤄질 경우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금융지주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소유를 금지한 현행법에 따라 그룹구조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은 보유한 자사주를 바탕으로 인적분할을 한 후 삼성에버랜드와 합병하고 삼성생명은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해 지배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홀딩스, 삼성물산홀딩스, 에버랜드홀딩스를 각각 분할 설립한 뒤 지주회사간 인수합병(M&A)을 실시, 거대한 통합지주사를 출범시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대원칙은 3세가 지분 정리 후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고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이어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더라도 삼성생명, 삼성물산을 통한 3세 경영체제의 지배구조를 지속할 수는 있다"며 "다만 낮은 주력회사 지분율, 향후 3세간 지분 정리, 중간금융지주 등을 감안하면 지주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홀딩스, 삼성물산홀딩스, 에버랜드홀딩스를 합친 통합지주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최대주주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하부에 삼성전자, 삼성물산, 에버랜드 등을 자회사로 둔다는 것. 금융 사업 부문의 경우 중간금융지주사를 새로 만들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을 등 금융 자회사를 둘 것이 큰 그림이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금산 분리를 가정하면 삼성그룹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 7.21% 매각으로부터 출발할 것"며 "또 삼성그룹이 중간 금융지주사를 세워 금융자회사들을 지배, 전체 지배구조에 미치는 파장은 최소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