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기철 기자] 축구대표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더랜드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25·선더랜드)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부친 기영옥 광주광역시축구협회장의 치밀한 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내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가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한 강연회 '브라질월드컵을 향한 태극마크, 그 이름을 빛내다'에 초대된 기 회장은 초중고교 축구선수·학부모·지도자 등 500여 청중 앞에서 기성용을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시킨 비결을 공개했다.
기 회장과 MC 김성주(42)·최순호(52) 축구협회 부회장의 '3인 토크쇼'로 이뤄진 이날 강연회에서 기 회장은 청중들의 사전 질문과 현장 질문들에 답하는 방식으로 기성용의 축구 꿈나무 시절, 국내 학창생활, 호주유학 등 지금의 기성용의 토대가 된 지난 시간들을 회고했다.
기 회장은 "(기)성용이가 소질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축구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4세 때부터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돌아봤다.
기 회장은 축구공, 축구화를 사다 준 것은 물론, 축구 경기 비디오 테이프도 자주 틀어줬다. 현역 감독(금호고·광양제철고)이었던 이점을 살려 경기장에도 곧잘 데리고 다녔다.
그는 "그런 것들이 성용이에게 도움이 됐다"고 짚었다.
기 회장이 아들의 '천재성'을 확실히 파악한 것은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기성용이 3학년이되던 만 8세 때였다.
"성용이에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3학년 때 광양중 감독에게 부탁해 광양중 1학년 연습경기에 뛰어보게 했다. 프리킥 상황에서 감독에게 부탁해 성용이가 차도록 했다. 그때 성용이가 프리킥을 감아 차서 골을 넣었다. 거기서 성용이에게 킥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축구부에 정식으로 입단을 시켰다."
그러나 기 회장은 기성용을 이내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게 된다. 학교의 지도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평소 지론이 힘의 축구보다는 기술의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은 나중에 성장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지만 기술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려서 몸이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울 때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면 나중에 힘들어진다. 기술축구를 위해서는 어릴 적에는 최대한 공을 갖고 많이 놀아야 한다. 그런데 그 학교는 공을 갖고 놀게 하기보다는 게임 한 번 하게 한 뒤 운동장만 10바퀴를 달리게 했다. 어렸을 적부터 체력 훈련에 몰입하다 보면 당시에는 힘으로 밀어붙여서 잘할 수 있으나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팀은 선수들이 공을 갖고 즐겁게 노는 팀이 돼야 한다."
어릴 적부터 공과 가까이 하며 기술을 갈고 닦게 한 기 회장의 지도 스타일은 현재 기성용이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더 큰 성과를 낳았다.
"성용이에게 왼발을 잘 쓰는 고종수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고, 운동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그러자 성용이가 끊임없이 왼발 연습을 했다. 덕분에 성용이가 현재 양발을 다 잘 쓸 수 있게 됐다."
기 회장은 기성용을 2000년대 붐이 불었던 브라질이 아닌 호주로 유학을 보냈다.
"성용이를 잘 가르치면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호주 유학을 선택했다. 물론 당시에는 브라질 유학이 대세였다. 박주영도 브라질에 갔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성용이를 영어권 선진국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만 잘 배우면 행여 다치거나 축구를 잘 못해서 도태되더라도 축구판에서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 회장은 아들의 장점이 '장신 미드필더'라고 말했다. 기 회장이 말한 기성용의 장점은 곧 한국을 넘어 세계로 통하는 그의 경쟁력이다. 여기에도 기 회장의 전략이 작용했다.
"그동안 한국 축구의 미드필더는 다 작았다. 장신 미드필더가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쳐 감독에게 성용이에게 미드필더를 시키라고 했다. 약 190㎝의 큰 키로 기술이 필요한 미드필더를 본다는 것이 특출하다. 한국 축구에 '장신 플레이메이커'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 같아 뿌듯하다."
기 회장은 기성용의 단점도 솔직히 지적하면서 조속한 보완을 촉구했다.
"사실 성용이가 헤딩이 약하다. 어렸을 때 헤딩을 하다가 이를 다친 탓인지 어려서부터 헤딩을 잘 안했다. 유럽은 미드필드에 숫자를 굉장히 많이 두기 때문에 중원에 공간이 많이 없다. 그렇다면 롱 볼을 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헤딩을 해야 한다. 헤딩을 안하면 경쟁력이 없어진다. 못 마땅하다. 헤딩을 잘해야 하는데…."
기 회장은 모두가 선망하는 스타 플레이어의 부친으로서, 전직 지도자로서, 축구계 원로로서 초중고 축구 선수들과 학부모, 지도자들에게 이 같이 당부했다.
"모두가 축구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 다른 길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심판, 지도자 등 축구에도 선수 외에 여러 길이 있다. 축구를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초중학교때까지 학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용이의 호주 유학시절을 보면 호주에서는 주말에만 경기를 하게 하고, 주중에는 못하게 한다. 선수들도 수업을 다 받게 한다. 한국의 학원 축구도 그래야 한다. 최소한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운동과 수업을 같은 비중으로 시켜야 한다. 초중학교까지만이라도 선수들이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훗날 축구를 그만두고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