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창진 기자] 최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6강 아스날(잉글랜드)과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2차전에서 등장한 '동성애 혐오' 플래카드 파문에 대해 UEFA가 칼을 빼들었다.
UEFA는 지난 25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뮌헨의 서포터들이 차별주의적 행동(UEFA 징계규정 14항)을 하고 사회통념에 반하는 플래카드(UEFA 징계규정 16항)를 내걸어 아래와 같이 징계했다"고 밝혔다.
징계 내용은 두 가지다. 오는 4월10일 뮌헨의 홈구장인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리는 챔스 8강 1차전에서 관중석 124구역을 폐쇄하는 것과 벌금 1만 유로(약 1500만원)을 부담시키는 것이다.
폐쇄 예정 구간의 수용인원은 약 700명으로 이 자리가 1등석으로 티켓당 가격이 200유로(30만원)를 넘어 뮌헨은 벌금 외에도 1만4000유로(2억8000만원) 이상의 매출 손실도 입게 됐다.
특히 UEFA는 "뮌헨이 징계에 따르지 않을 경우 5만 유로(약 7500만원)의 추가 벌금은 물론 다음 챔스 홈경기시 무관중 경기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발단은 지난 12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렸던 아스날전에서 124구역에 앉은 일부 뮌헨 팬들이 아스날의 애칭 '거너스(Gunners·포병)'와 남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게이(Gay)'를 합친 '게이 거너스'라는 글자와 아스날의 상징물인 '대포' 앞에서 바지를 내린 채 엉덩이를 내놓고 서있는 아스날의 독일인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26)의 그림을 함께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는 최근 자국 출신 외질이 지난 7일 독일 일간지 빌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표팀의 '베스트11' 명단에서 제외될 정도로 독일대표팀에서도 입지가 좁아진 데 대한 조롱이다.
동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의 아스날이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반대에 나선 데 착안한 비아냥으로 해석된다.
아스날은 최근 아스톤빌라, 첼시, 크리스털 팰리스, 에버턴,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토크시티, 선더랜드, 웨스트햄 등 EPL의 10개 클럽과 함께 '풋볼 대 호모포비아(Football v Homophobia)' 캠페인에 나섰다.
그 동안 축구계에서는 동성애가 터부시돼 왔다. 은퇴한 잉글랜드 풋볼 리그 1(현 프리미어리그)의 흑인선수 저스틴 파샤누(1961~1998년)가 37세의 나이로 자살한 것도 1990년 커밍아웃 이후 부진할 때마다 쏟아지던 팬들의 비난에 지쳐버린 여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0년 넘게 흘렀지만 EPL에서는 파슈누 이후에 커밍아웃을 한 선수는 없다.
지난해 5월에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EPL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 8명이 자신이 게이임을 팀 동료들에게 고백했다"고 전했고, 클라크 칼라일 영국 프로축구선수협회(PFA) 회장 역시 "현역 선수 가운데 게이가 있다"고 확인하기도 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커밍아웃은 없었다.
칼라일 회장이 "게이 선수들은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반감을 사게 될까 두려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축구계에서도 동성애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아스날 등의 호모포비아 반대 캠페인 참여 외에도 지난해 2월 커밍아웃을 한 뒤 은퇴했던 미국 축구 대표 출신의 로비 로저스(27)가 3개월 뒤 LA 갤럭시와 계약하며 성공적으로 복귀한 것, 이탈리아축구협회의 호모포비아 반대 영향으로 이탈리아 대표팀의 일부 선수와 코치진이 지난 6일 마드리드의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동성애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신발 끈을 맨 것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뮌헨의 터전인 독일 축구계의 경우에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어쩌면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직후 독일 대표팀이 '게이 소굴(bunch of gays)'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것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당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전 독일 국가대표팀 주장 미하엘 발라크(38)의 에이전트 미하엘 베커가 인터뷰에서 "독일 대표팀의 일부 선수들은 동성애자다. 전 대표 선수 중 한 명이 독일 대표팀의 '게이들의 소굴'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완전한 동성애자는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발 더 나아가 "과거 공격적이고 투박했던 독일 축구가 남아공월드컵에서 교묘하고 화려하며 우아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대표팀 내의 동성애 때문"이라면서 " 전문가들은 독일 분데스리가 전체 선수의 10% 가량이 동성애자인 것으로 추산한다"고 거들었다.
이 때문에 여자 못잖게 예쁜 얼굴과 적극적인 호모포비아 반대 운동 등으로 '게이가 아니냐'는 의문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독일 대표팀 주장 필립 람(33)은 남아공월드컵 직후인 7월 2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하면서 "아내는 연막용이 아니다"고 말하고, 나아가 2011년 9월 내놓은 자서전에서도 "나는 게이가 아니다"고 항변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게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유감이다"면서도 "하지만 (게이 선수가)커밍아웃을 하는 것에는 반대다. 파사누이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해 축구계에 만연한 호모포비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 람의 소속팀 서포터스가 내건 플래카드가 호모포비아라는 UEFA의 판정을 받아 더욱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