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한·미·일 정상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6년만에 가진 3국 정상회담에서 예상대로 한·일 간 과거사 이슈는 배제됐다. 당초 이번 3국 정상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얼굴을 맞대는 자리라는 점에서 양국 간 과거사 관련 현안의 언급 여부가 주목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한 브레이크 없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 때문에 통상적으로 취임 초기 갖던 한·일 정상회담을 1년 넘게 갖지 않았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정상회의 무대에서 세 차례 가량 조우가 이뤄졌지만 별다른 대화 없이 등을 돌려왔다. 이번 회담은 사실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로 한·미·일 공조 복원 차원에서 열린 것인 만큼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과거사 문제 등은 주된 논의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돼 왔다. 실제로도 45분가량의 회담 시간 대부분은 북핵 문제 해결과 3각 공조 체제 복원에 맞춰졌고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은 당연히 미국의 가장 긴밀한 동맹국”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우리 일본과 한국의 동맹은 이 지역의 안보와 안전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에 나선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태지역 재균형정책으로 아시아로의 회귀를 노리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한·일 간 긴장완화가 절실하다. 과거사 이슈를 배제한 3국 정상회담을 미국이 주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베 총리가 이날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도 미국의 압박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박 대통령과 눈을 맞추며 한국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모두발언에서는 “한국의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이 긍정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아베 총리는 미국으로부터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종용받아온 데다 중국과의 영토분쟁에서 미국을 확실한 지원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미국에 호응하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도 “아·태 재균형 정책이 역내 평화와 협력의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며 미국의 입장에 보조를 맞췄다. 결과적으로 이날 3국 정상회담은 오바마 대통령의 독려 아래 한·일 정상이 관계 개선을 위한 무대에 일단 한 발 들여놓은 듯한 그림이 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이는 양국 간 갈등을 언제든 고조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만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한·일 관계 개선의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최근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3국 정상회담이 성사되자 “검증작업에서 다른 사실이 나오면 고노 담화를 대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로 우리 정부의 뒤통수를 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이날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언급이 단지 '언론플레이'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조치로 이어져야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 북핵 대응을 위한 3각 공조 체제 복원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