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국제 핵안보 체제 발전을 위한 4대 제안을 내놨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전임 의장국 자격으로 마크 루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과 함께 모두연설에 나섰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전세계 53개국 정상 및 4개 국제기구(UN·IAEA·EU·인터폴) 대표들이 참석하는 안보분야 최대 다자정상회의다. 1차 회의는 2010년 워싱턴에서, 2차 회의는 2012년 서울에서 열렸다.
박 대통령이 모두연설을 통해 제시한 4대 제안은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 아래 국제 핵안보 체제가 추구해 나가야 할 발전 방향을 담은 것이다. ▲핵안보·핵군축·핵비확산에 대한 통합적 접근 ▲핵안보 지역협의체 구성 ▲국가간 핵안보 역량 격차 해소 ▲원전 사이버테러 대응책 강구 등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은 우선 미국과 러시아가 고농축우라늄(HEU) 매매계약을 체결해 핵탄두로 전략을 생산한 이른바 '메가톤즈 투 메가와츠(Megatons to Megawatts)' 사업을 예로 들어 핵안보 등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강조했다. 이 사업을 통해 미국은 러시아의 핵탄두로부터 나온 무기용 HEU를 사들여 저농축우라늄(LEU)로 전환,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했다. 미국은 199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5㎏짜리 핵탄두 2만개에 해당하는 500t의 HEU로 20년간 자국내 전력의 10%를 공급했다. '핵군축'을 통해 '핵비확산'을 달성하고 나아가 '핵안보'를 공고히 한 전형적인 사례인 셈이다. 박 대통령도 “이것이야말로 ;무기를 쟁기로 만든 것(swords to plowshares)'”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현존하는 위험 핵물질을 제거하는 것에 더해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지 않도록 하는 '핵분열물질생산금지조약(FMCT)'의 체결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FMCT는 무기용 핵분열성 물질의 생산 자체를 금지하는 조약이지만 그 대상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교섭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사실상 일본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원자로와 우리나라에는 없는 재처리시설을 보유한 상태에서 약 44t 이상의 플루토늄을 축적해 놓고 있어 핵무기 보유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는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일본의 과잉 핵물질 보유가 동북아의 핵무장을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고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는 데 있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이 문제를 주시해 왔다.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지난 12일 핵안보정상회의 관련 특별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어떤 국가든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의 핵물질을 보유·생산한다면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되고 자국 및 주변국의 안보에도 위험을 줄 수 있다”고 말해 일본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을 낳은 바 있다.
박 대통령이 “동북아 지역에는 전 세계 원전의 약 23%가 있는데 이처럼 원전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 핵안보 지역협의체가 구성된다면, 원전 시설에 대한 방호는 물론 국가 간 신뢰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일본이 운영중인 원전은 올해 2월 기준으로 48기에 달한다. 이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우리나라(23기)와 중국(21기)의 원전보다도 많다.
박 대통령은 핵테러 위협을 상기시키면서 “3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재앙이 테러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은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말을 인용해 국가 간 핵안보 역량 공유를 강조하고 원전 사이버 테러에 대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중심의 방어지침 및 시스템 개발과 방호 체제 구축 등도 제안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꼭 필요하고, 그래서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조를 촉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핵비확산·핵안보·핵안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가진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해 반드시 폐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비확산 원칙과 관련해 “지금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과 유엔 안보리결의 등을 어기고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핵안보와 관련해서는“만약 북한의 핵물질이 테러 집단에게 이전된다면 세계 평화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안전과 관련해서도 “최근 국제 전문연구기관에서 발표한 바 있듯이 북한 핵시설의 안전성 문제도 큰 우려를 낳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 북한의 영변에는 많은 핵시설이 집중돼 있는데 한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핵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라면서 북핵이 한반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공통의 이슈인 만큼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