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6.4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청와대가 각종 관권선거 의혹에 휩싸여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파기하고 대안으로 상향식 공천제도 확립을 제시했지만, 이조차 관권선거 의혹들이 불거지며 무색해진 상황이 됐다. 지방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 무리한 공약파기 및 선거개입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고, 이로 인해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야당은 이미 정권 차원의 조직적이고 전면적인 선거개입이 이뤄지고 있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 덕담, 언론에 떠드는 예비후보자
6.4지방선거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안전행정부 장관직에서 사퇴한 유정복 전 장관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가졌다. 공정한 선거를 관할해야 할 주무 장관이 사퇴하자마자 직접 선수로 뛴다는 자체도 도마 위에 올랐지만, 유 전 장관이 이날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유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게 “(인천시장 출마를) 결단했으면 잘 되길 바란다”고 격려한 사실을 밝혔다. 이와 관련,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은 인천이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 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을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고, 야당은 박 대통령과 유 전 장관을 향해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의 명백한 선거 개입성 발언이었고, 유 전 장관은 이 같은 朴心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비난이었다. 야당의 집중적 공세가 이어지자,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이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했는데 덕담을 해주셨다”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유 전 장관은 이튿날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이 같이 해명하며 “기자들이 질문을 했는데, ‘대통령께서 만나서 대충 얼굴만 보고 아무 얘기도 없었다’(고 답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저는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제가 해야 될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저는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과 저하고 가깝게 측근이다, 소위 말하면 핵심이다. 이런 얘기를 세상이 다 아는 얘기 아니냐”며 “제가 굳이 무슨 대통령의 그런 얘기를 해서 선거에 도움이 된다, 이런 판단을 하겠냐”고 박심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비판을 전면 차단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선거개입성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김정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관련 논평에서 “이번 지방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주요 후보자들이 직접 공개한 박근혜 대통령 발언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부대변인은 우근민 제주지사가 새누리당 제주도당 신년인사회 인사말을 통해 “박 대통령이 정부와 함께 제주 발전을 위해 우 지사가 같이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의기투합하고 이심전심으로 뜻을 모았다”고 발언했었던 점, 친박 서병수 의원이 자신의 저서 ‘일하는 사람이 미래를 연다’에서 부산시장직에 도전하겠다는 자신에게 박 대통령이 “잘 알겠습니다. 부산은 중요한 곳이니 하셔야지요”라고 답변했다고 기록한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이와 관련, 김 부대변인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며 “대통령이 명백하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발언들을 하고 이 말을 들은 후보잗르은 대통령의 발언이라며 자랑스럽게 공공연히 유포시키면서 선거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 선거개입이 아니면 뭐냐”고 강하게 따져 물었다.
김정현 부대변인은 “친박 후보들을 불러 대놓고 선거승리를 기원하고 무소속 단체장을 무리하게 입당시켜 예산을 밀어주고, 또 이들 후보들은 자랑스럽게 대통령 발언을 소개하고 다니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냐”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같은 선거개입 발언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靑비서관이 지역 후보자 면접 참여…논란일자 사표
그런 가운데, 지난 8일엔 청와대 민정수석실 임종훈 민원비서관이 선거개입 논란에 휘말려 자진 사표를 제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임 전 비서관은 지난달 22일 수원시 한 선거구에서 경기도의원과 수원시의원 등 선거에 출마할 입후보자 15명과 함께 등산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등과 함께 이들 15명에 대한 면접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서도 “청와대가 임 비서관의 사표로 선거개입 논란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한정애 대변인은 9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이 같이 비난하며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지역구까지 챙기는 노력이 다만 임종훈 비서관 개인의 문제로, 개인의 일탈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냐”고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비서관이 시도의원 공천과정에 개입해 사실상 공천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지역이 여기밖에 없겠냐는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며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파기하고 왜 반드시 공천을 하겠다고 했는지 이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대변인은 특히, 유정복 전 장관 관권선거 논란까지 언급하며 “국민은 정권 차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6.4지방선거에서의 관권선거가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선거개입 발언 논란, 비서관의 사전 공천 등 현재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선거법 위반 논란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 선거중립 의무를 엄정히 지키겠다고 천명하기 바란다”고 엄중 촉구했다.
한편, 같은 논란에 대해 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이재오 의원도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수원에서 청와대 비서관이 공천에 개입해서 사실상 공천을 다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지역이 여기밖에 없겠냐”고 야당과 같은 내부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이것만 봐도 기초공천은 대선공약대로 폐지하고 중앙당은 수원뿐만 아니라 전 지역에 조사단을 급파해서 사전공천 여부를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수원 사건이 사실이라면 중앙당은 검찰에 직접 고발하고, 청와대는 관련자를 즉각 해임해야 한다”며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지방선거 후유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