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야권의 특검 도입 요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검찰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사건과 관련 증거자료에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서울시 공무원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위조된 자료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문서가 공개된지 25일만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번 의혹과 관련한 야권의 줄기찬 입장 표명 요구에도 계속해서 침묵을 지켜왔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전날 밤 국정원이 대국민 사과성명을 낸 만큼 추가로 언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조력자 김모씨가 남긴 유서로 전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마침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황에서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달리 이번 사건은 '박근혜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부담이 컸던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혀 온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며 거리를 둬 왔지만 증거조작 의혹은 박 대통령이 임명한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에서 제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의혹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박 대통령이 직접 고강도 개혁조치를 약속한 국정원이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는 점 자체만 놓고도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박근혜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장이 될 6·4 지방선거가 8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박원순 시장 흠집내기'라고 보는 야권의 공세에서 재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조속히 밝혀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 것도 이같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권의 특검 도입 요구에는 응답을 내놓지 않은 만큼 박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공세는 쉽게 사그러 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 가능성도 시사했지만 특검 도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선긋기를 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