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2009년 노영석(38) 감독이 데뷔작 '낮술'을 내놓았을 때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비슷했다. 단점이 명확하다, 장점 또한 명확하다, 좋은 부분이 그렇지 않은 지점을 눈감아 주게 한다….
'낮술'의 기술적 완성도는 극장에 걸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고르지 않은 사운드, 초점이 잘못된 촬영, 심지어 이미지 라인(카메라가 배우를 담을 때 시각적인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한 쪽 위치에 고정시켜야 한다는 규칙)까지 맞추지 않았고, 배우의 연기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자연스러운 유머감각,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 줄 아는 화술은 관객들이 '이만하면 됐지'라며 만족스러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노 감독은 포기해도 되는 것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연출가였다. 이런 그가 5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조난자들'이다.
혼자 깊은 산속 주인 없는 펜션을 찾은 '상진'(전석호)은 우연히 동네청년 '학수'(오태경)를 만나 그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상진'은 '학수'가 갓 출소한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나치게 친절한 그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펜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냥꾼, 다짜고짜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는 무례한 여행객과 마주치면서 왠지 모를 위협을 느낀다. 그러던 중 '상진'은 그날 밤 여행객 중 한 명이 피를 흘린 채 죽어있는 것을 목격한다.
'조난자들'은 '낮술'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굳이 구분하자면 '낮술'은 코믹 로드무비 정도로 말 할 수 있고, '조난자들'은 스릴러로 규정할 수 있다. 노 감독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 두 편을 만들었지만 극을 직조해내는 방식은 달리하지 않았다. 그의 방식은 간단하다. 관객이 영화를 궁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조난자들'이 형성하는 긴장감은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특정 성격을 부여받은 인물을 제한된 상황에 던져놓고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가만히 바라보는 식이다. 특히 '학수'라는 캐릭터가 그렇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을 홀로 외딴 곳으로 여행 온 사람에게 붙여놓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무례한 여행객을 외딴 곳에, 무표정한 사냥꾼을 외딴 곳에, 과묵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을 외딴 곳에 집어넣은 뒤 이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조난자들'은 성공적인 스릴러다. 낯선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불편함, 그 불편함이 주는 긴장감, 이 긴장감이 주는 묘한 공포를 차례로 관객에게 던지면서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사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도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없지 않은가.
관객의 졸였던 마음을 풀어주는 유머도 좋다. 과하지 않게, 짜내지 않고, 그 상황에 있을 법한 우스운 행동이나 말을 집어넣어 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지루하지 않은 리듬감을 갖게 된다.
연기도 나쁘지 않다. 전석호, 오태경, 최무성, 누구의 연기도 돌출하지 않고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연기다.
하지만 '조난자들'의 결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이보다 황당한 결말도 없다. '조난자들'에 대한 호불호는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