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6일 개봉하는 유럽(영국·프랑스·스웨덴·벨기에 합작) 영화 ‘다이애나’(감독 올리버 히르비겔)는 왜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이다.
대영제국 찰스(66) 왕세자의 전처 다이애나(1961~1997) 웨일즈 공작부인은 이미 잊혀져가는 인물이다.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으니 웬만한 사람은 그녀에 대해 알만큼 안다. 수많은 소문과 음모론도 물릴 때가 됐다. 이젠 그녀의 아들 윌리엄(32) 왕세손의 아내 케이트(32)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이 그녀의 자리를 충분히 대신하고 있다.
다이애나를 신격화할 정도의 광팬이 아니라면 새삼 다이애나에게 향수를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물론 영화는 2001년 발표된 케이트 스넬의 책 ‘다이애나, 그녀의 마지막 사랑’을 바탕으로 다이애나 최후의 생 2년간을 조명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로맨스를 부각시켰다는 변별점이 있긴 하다. 지뢰퇴치와 같은 그녀의 대외활동이 간간히 비춰지긴 한다. 파리에서 아랍계 재벌2세 도디 알 파예드와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파키스탄 태생의 심장전문의 하스낫 칸(55)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다이애나 추모열기 붐에 맞춰 책이 나온 것도 벌써 13년 전이다.
해외 언론도 이 영화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싸구려 시나리오, 어색한 연출에 다이애나 역의 나오미 왓츠만 홀로 용을 썼다”는 평부터 “이런 영화로 다이애나의 생애가 그려지다니 안 된 일”이라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인정받은 영국출신 호주배우 나오미 왓츠(46)가 다이애나로 분해 고군분투한다. 우울해 보이는 눈빛이 닮아 보이긴 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2011)에서 메릴린 먼로(1926~1962) 역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34)가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먼로가 고인이 된지 오래돼 실제의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워낙 흡인력 넘치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만큼 재창조할 여지도 컸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뚜렷한 다이애나를 되살려낸다는 것은 힘든 과제였다.
수줍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곤 했던 고인의 흉내를 잘 내려고 하면 할수록 ‘짝퉁’같다는 느낌만 더해지고 만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일단 발레를 포기해야했을 정도로 178㎝의 큰 키로 남성적 분위기의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오미 왓츠는 다이애나의 겅중겅중한 걸음걸이까지 열심히 따라했으나 164㎝ 키로는 역부족이다. 목소리와 말투도 열성적으로 답습했으나 다이애나의 겉보기에 치중하느라 연기에서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구시대적 ‘신데렐라’ 다이애나의 ‘배부른’ 고민 자체가 21세기에는 잘 와닿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귀족출신이기는 했지만 고졸 유치원 보모였던 다이애나는 19세에 찰스와 결혼하며 일약 ‘스타’가 된다. 하지만 찰스에게는 카밀라 파커 볼스(67)라는 오랜 정부가 있었고 “결혼생활을 셋이 한 셈”으로 살아야했다.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해 경험과 찰스와의 이혼 결심을 밝히면서 평범한 여인으로서의 행복을 찾기로 결심한다.
따뜻한 박애심을 지녔으나 영화 속에서도 표현되듯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를 정도로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다이애나는 박식하고 자유로운 외국인 의사에게 빠져든다. 별거 중이던 1995년 병문안을 하러 들른 병원에서 만난 하스낫 칸(나빈 앤드루스)이 그 대상이다. 다른 이들과 달리 격의 없이 그녀를 대하는 칸에게 빠져든 그녀는 검은머리 가발을 쓰는 변장술과 경호원과 파파라치의 시선을 따돌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몰래몰래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와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맥과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하고 파키스탄의 부모를 찾아가 결혼허락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 일에 집중하며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살길 원하는 하스낫 칸에게 죽기 한 달 전인 1997년 7월 이별통보를 받는다. 항상 파파라치에게 쫓기던 다이애나는 사랑의 복수를 위해 새로운 연인인 이집트 출신 도디 알 파예드와 ‘화려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찍도록 유도한다.
유독 이교도 유색인을 골라 사귀는 다이애나의 속내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나 감성적으로 애절하게 그려지지 못했다. 영국왕실에 대한 반항심과 영국이라는 현실을 탈출하고픈 욕구가 더 앞서 보인다. 나오미 왓츠의 연기도 인도계 영국배우 나빈 앤드루스(45)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왠지 겉돈다. 의학박사 학위가 끝나면 영국을 벗어나 살자고 애인에게 조르는 다이애나는 일탈을 꿈꾸는 철없는 공주처럼 보일 뿐이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된 후 미국에 넌더리를 느낀 재클린 케네디가 그리스 출신의 세계 최대 선주인 늙은 오나시스와 결혼해 자신과 아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특권은 다 누리면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소탈한 아낙네의 삶을 꿈꾸는 부조화에 그다지 공감도, 동정도 가지 않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세상을 바꾸는데 쓰고자 한 다이애나의 의도도 피상적으로 살짝만 보여지는 것이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