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기타는 매우 열정적인 색채를 지녔다. 사랑과 증오처럼 대비되는 감정들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다. 손가락으로 직접 현을 튕기기 때문에 다른 악기보다 더 특별한 친밀감과 감정적인 유대감을 악기로 전달할 수 있다."
몬테네그로의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밀로시(32)는 e메일 인터뷰에서 "그런 면에서 기타는 사랑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라고 소개했다. "모든 남자들이 여자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내가 여자를 꼬드길 목적이 없었다면 기타를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밀로시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타리스트다.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드'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독일의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인 '2012 에코 클래식'에서 '신인상' 등을 받았다.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새 앨범 '아랑후에스(ARANJUEZ)'를 발매했다. 밀로시가 기타의 본고장인 스페인으로 떠나는 여정이다. 근대 클래식 기타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 스페인 작곡가들의 기타 음악으로 채웠다.
"기타는 스페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악기"라고 못박는다. "스페인의 공식 국가 악기이기 때문"이라면서 "내 자신을 세계에 드러내 보이려면, 기타의 가장 핵심적인 레퍼토리와 기타를 연주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음악을 먼저 녹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중해 음악에 뿌리를 둔 자신의 데뷔 앨범 '메디터레이니언(Mediterranean)', 남미에 기반한 2번째 앨범 '라티노(Latino)' 역시 마찬가지다. "첫 앨범부터 이번 앨범까지, 기타의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곡들을 탐험하는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앨범 수록곡 중 시각 장애인임에도 스페인의 민족적 색채를 띤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의 대표작인 '아랑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과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Fantasía para un gentilhombre)이 눈길을 끈다.
"로드리고가 중요한 이유는 역사상 가장 멋지고 상징적인 기타곡들을 썼기 때문"이라면서 "'아랑후에스'는 기타라는 악기의 룰을 뒤엎어버린 곡이다. 기타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에서 솔로를 연주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기타는 소리가 크지도 않고 느낌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드리고는 기타라는 악기의 지평을 넓히고, 연주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냈다. 그는 100년이나 살았다. 그 기간 환상적인 기타 음악을 썼다. 로드리고가 없었다면 20세기의 기타 음악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거다.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기타의 역사와 유산을 되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에서는 배울 게 많다."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기도 한 '아랑후에스'를 앨범 타이틀로 내세운 것에 대해 "로드리고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곡이 20세기 기타 음악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라면서 "발음하기가 약간 어려운 이름일지는 모르겠지만, 클래식 기타의 역사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10곡이 실린 앨범에서는 또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마누엘 드 파야(1876~1946)의 대표작인 '드뷔시 무덤에 바치는 찬가'(Homenaje pour le Tombeau de Claude Debussy)와 그의 모음곡 '삼각모자'(El Sombrero de Tres Picos) 중 '방앗간 주인의 춤'(Danza del Molinero)도 눈길을 끈다.
"로드리고와 파야는 어떤 면에서 깊은 연관이 있는 작곡가"라고 짚었다. "파야는 처음으로 오직 기타만을 위한 곡을 작곡한 사람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기타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로 결정을 한 것"이라면서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로드리고도 없었을 거다. 그래서 내가 파야를 로드리고 앞에 두는 것"이라는 마음이다.
특히, 이번 앨범에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야닉 네제 겐(39)과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힘을 실었다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내가 영국 로열아카데미를 갓 졸업했을 때 처음으로 협연의 기회를 준 국제오케스트라"라면서 "그 경험은 내 솔로 커리어에 중요한 기점이 됐다"고 알렸다.
야닉에 대해서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멋진 지휘자 중 한 명"이라면서 "그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카르멘'을 지휘하는 걸 듣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래서 지휘자를 누구로 할 지 결정해야할 시점이 왔을 때 야닉을 추천했고 직접 연락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비틀스'의 성지로 통하는 런던의 역사적인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녹음 당시 그곳에서 만들어낸 에너지와 음악의 느낌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이 자랑스럽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자부했다.
'메디터레이니언'을 발표한 2011년 한국에서 쇼케이스를 열었다. 2012년에는 단독 공연으로 클래식 클럽 공연 '옐로 라운지'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고전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이건 정말 소중한 현상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라고 특기했다. "젊고 패셔너블하며 열정넘치는 사람들이 서울의 클럽이나 공연장을 찾은 것을 보고 있으면 아티스트로서 엄청난 특권을 가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들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느낀다. 그래서 한국을 사랑한다."
대중과 접점을 꾸준히 넓히려는 노력을 해온 밀로시는 "젊은 아티스트라면 음악을 대중과 젊은층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음악을 듣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길 거고, 음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아랑후에스'를 통해 한국 청중이 느꼈으면 하는 바를 묻자 "앨범에 대한 느낌은 모두 개인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만의 느낌과 앨범을 듣는 방식이 있을 것"이라면서 "기타의 멋진 점은 가장 교양있고 고전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부터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봤다. "당신이 듣고 싶은 방식으로 앨범을 감상하라. 저녁에 친구와 함께 할 때든, 혼자 와인을 마시면서든, 요리를 하면서든, 자기 전이든, 일어나서든, 언제든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각자의 감상법을 알고 있다. 여기에는 공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