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미국의 가수 겸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41)가 8년 만에 발표한 솔로 앨범 '걸(GIRL)'은 절정에 오른 기량을 유감 없이 과시한다.
지난해 최고 히트곡인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겟 러키(Get Lucky)'와 미국 R&B 가수 로빈 시크(37)의 '블러드 라인스(Blurred Lines)' 등 윌리엄스가 참여한 곡들의 흔적도 슬며시 드러낸다.
그가 작년에 작업한 곡은 어림잡아 100곡 이상이다.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메인스트림의 히트곡뿐 아니라 인디 뮤지션과도 꾸준히 호흡을 맞췄다.
총 10곡이 실린 이번 솔로 앨범은 윌리엄스가 자신의 음악 인생의 한 막을 정리한 듯하다. '겟 러키'와 '블러드 라인스'가 그러하듯 최근 그가 들려준 음악의 대다수는 1970~80년대 펑크와 디스코에 뿌리를 뒀다. 이번 앨범 역시 두 장르가 기반이다. 랩과 보컬을 오가던 기존과 달리 이번에는 보컬에만 주력했다.
할리우드 스타 메릴린 먼로(1926~1962)의 이름에서 따온 첫 트랙 '메릴린 먼로'는 펑크가 바탕이면서도 시작부터 등장하는 스트링 세션으로 우아함을 풍긴다.
미국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33)와 함께 부른 '브랜드 뉴(Brand New)'는 리듬을 쪼깬 흥겨움이 인상적이다. 곳곳에 포진한 브라스 활용이 그루브함을 더한다.
베이스의 둔탁함이 곡의 균형을 잡고, 재기발랄한 가성과 유쾌한 숨소리와 돋보이는 '헌터(Hunter)', 곡 전반 내내 깔리는 긁히는 기타 소리가 포인트인 '거시(Gush)' 역시 빛나는 트랙이다.
지난 3일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던 애니메이션 '슈퍼배드2'의 '해피'는 작품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듯 유쾌하다. 윌리엄스는 이날 시상식에서 이 곡을 축하 무대의 하나로 꾸몄는데 객석으로 내려가 '노예 12년'으로 여주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뇽(31), '아메리칸 허슬'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이미 애덤스(40)와 흥겹게 춤을 추기도 했다.
'컴 겟 잇 베이브(Come Get It Babe)'에서는 악녀로 거듭난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22)의 장점을 새삼 발견하게 하며 재기발랄함을 끌어낸다. 레게 바이브가 인상적인 '노 후 유 아(Know Who You Are)'에서는 미국 R&B 스타 앨리샤 키스(33)와 감미롭게 주고 받는 호흡을 자랑한다.
현악기와 일렉트로닉이 교묘하게 직조된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에서는 '로봇 보컬' 다프트 펑크를 소환, 1970년대의 느낌을 살린다. 아프리카 음악 요소를 차용한 '로스트 퀸'은 윌리엄스의 읇조리는 듯한 보컬과 백코러스의 웅성거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러닝타임 4분 이후 잔잔한 파도소리를 기점으로 끈적한 R&B 스타일의 프리크로 넘어갈 때는 몽환적이다.
마지막 트랙 '잇 걸'은 윌리엄스가 총력을 집중한 곡이다. 화음과 웅성거림이 차지게 섞이는 가운데 신스 사운드와 베이스가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기타 리프가 포인트를 주는 완성도 높은 곡이다.
앨범은 이렇게 디스코와 펑크를 자유롭게 오가며 예상치 못한 전개로 신선함을 안긴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57)의 스트링 세션을 끌어들여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의 스트링 세션도 직접 녹음했다. 퍼커션, 박수 소리, 비트박스 등 윌리엄스의 인장과도 같은 효과들의 활용은 여전히 다른 곡들과 차별화되는 장치다.
음악적인 구성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은 윌리엄스는 노랫말에서도 자신이 이야기해온 것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 '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에서부터 곡의 존재감이 분명한 '메릴린 먼로'는 먼로일지라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예쁜 여자가 아닌 남들과 다른 여자를 원한다고 노래한다. '브랜드 뉴'에서는 좋은 여성의 사랑은 남성을 새롭게 바꿔놓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앨범은 여성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는 이야기로 귀결되며, 여성을 향한 예찬과 존경을 풀어낸다. 앨범 타이틀 'G I R L'은 익숙한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주기 위해 대문자와 스페이스를 활용해서 표기했다.
윌리엄스는 앨범유통사 소니뮤직을 통해 "이번 앨범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의 여성에 대한 나의 찬가"라면서 "앨범을 통해 여성을 향한 나의 관점들을 담으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잘해준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은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책임져 준 보스 같은 분들이다. 정말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한편, 버지니아 비치 출신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음악 신동으로 통했다. 채드 휴고(40)와 결성한 프로듀서팀 '더 넵튠스'로 프로듀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친 음반들의 판매량을 합치면 1억장이 넘는다. 휴고, 래퍼 샤이와 함께 넵튠스의 힙합 프로젝트그룹 'N.E.R.D'로도 활동한다. 이 팀은 얼터너티브록과 힙합이 결합된, 예측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디자이너, 미술가 등과 컬래버레이션부터 루이뷔통, 몽클레어와 같은 유명 브랜드 제품들의 액세서리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한다. 섬유 기업, 유튜브 채널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아이 앰 아더(I am OTHER)'라는 자신의 브랜드로 팝 컬처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그가 쓰고 나온 독특한 모양의 모자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프트펑크의 4집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Random Access Memories)'에 참여한 윌리엄스는 이 팀의 멤버들과 함께 지난달 제5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프로듀서' 부문을 비롯해 총 4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류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26)의 우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