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6일 개봉하는 미국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감독 장 마크 발레)이 호재를 맞았다. 출연 배우 매슈 머카너히(45)와 제레드 리토(43)가 3일 열린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우 주·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미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남우 주·조연상을 비롯해 다수의 시상식에서 남우 주·조연상을 나란히 혹은 번갈아 따냈다. 1980년대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의 생존투쟁 실화를 담은 이 영화는 텍사스 카우보이의 후예인 전기공 론 우드루프(1950~1992) 역의 머카너히, 트랜스젠더 레이언 역의 리토의 더블 ‘메소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다.
머카너히와 리토는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말기환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 각각 20, 14㎏을 감량했다. 둘은 인기스타가 되는데 연연하지 않고 ‘배우’로서의 긴 여정 끝에 진가를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머카너히는 지적이며 정의로운 변호사 역 전문이었다. ‘타임 투 킬’(1996), ‘아미스타드’(1997),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2011) 등에서 줄줄이 법조인 역을 맡았다. 2000년대에는 ‘웨딩플래너’(2001), ‘10일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2003),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2006), ‘사랑보다 황금’(2008), ‘고스트 오브 걸프렌즈 패스트’(2009)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연달아 출연해 섹시스타로 소비되는 듯했다. 뒤늦게 그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연기변신을 꾀하며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욕심을 드러냈다.
‘킬러조’(2011)에서는 소녀에게 꽂히는 변태 보안관, ‘매직마이크’(2012)에서는 남성스트리퍼 클럽 사장, ‘머드’(2013)에서는 살인 은둔자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며 연기 갈증을 풀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에서는 조던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롤모델이 되는 직장상사 마크 해나 역으로 잠깐 출연,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주인공을 압도했다. 마침내 ‘포텐’(잠재력)이 터졌다. 182㎝의 키에 61㎏까지 몸무게를 줄이고는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에이즈 환자 역을 몸부림치듯 온 몸으로 연기해내며 첫 오스카를 수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71년 루이지애나에서 두 번째 아이를 가진 미혼모가 돼 학교를 그만둔 소녀는 힘든 순간을 꿋꿋이 이겨내고 아이를 열정적인 사람으로 키워냈다”고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어두운 가정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리토의 변신은 더더욱 놀랍다.
연기자보다는 ‘서티 세컨즈 투 마스’라는 록밴드의 리드 보컬, 싱어송라이터로의 활동에 더욱 치중해왔다. 한때 여배우 캐머런 디아즈(42)와 약혼하면서 파파라치 사진으로 더 친숙했다. 마침내 여장남자 레이언 역으로 아껴놓았던 연기력을 한껏 뿜어냈다. ‘챕터37’에서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을 살해한 실존인물 마크 채프먼 역을 맡아 근 30㎏을 찌우는 등 지속적으로 어렵고 색다른 역할에 도전해온 결과다.
이 영화에서는 180㎝의 키에 53㎏까지 살을 뺀 빼빼 마른 모습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눈알요정’, ‘방부제미모’로 불리던 그의 곱상한 외모는 웬만한 여자보다 예쁘게 보일 정도다. 섬세한 동작과 수줍게 미소짓는 표정, 여성스러운 목소리와 말투까지 여자가 되고픈 남자의 행태를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연기해낸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까지 오른 시나리오 작가 크레이그 보텐은 1992년, 론 우드루프 사망 한 달 전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만큼 사실성이 돋보이는 이 시나리오는 20여년 간 지속적 조사로 다듬으면서 영화화되기에 손색이 없을 만한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감독은 최소한의 조명, 35㎜와 50㎜ 렌즈사용, 핸드헬드기법 활용으로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성을 높였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개봉해 영화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4%라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두 배우의 경이로운 체중조절과 뛰어난 연기력이 빚어낸 성과도 크지만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처음엔 눈을 뗄 수 없는 캐릭터 연기에 빠져들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론의 심경에 공감하게 되면서 점점 현 의료체계와 치료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영화에 동조하게 된다. 주제는 닉 놀티와 수전 서랜든이 나온 ‘로렌조 오일’(1992)과 비슷하다. 부신백질이영양증(ALD)이라는 희소난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다섯 살 아들을 위해 의학적 지식 없이 시작, 스스로 연구해 치료제를 만든 오돈 부부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가족사랑에 치중한 ‘로렌조 오일’과 달리 이 영화는 불합리한 의료 현실을 타파하려는 개인의 노력에 치밀하게 접근해나간다.
술, 담배, 도박, 코카인, 문란한 섹스로 점철된 방탕한 생활을 해오던 론 우드루프는 HIV바이러스 양성반응으로 30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981년 첫 에이즈 환자가 발견되면서 알려진 ‘20세기 흑사병’은 당시에는 치료제가 없는 공포의 불치병이었다.
병원에서는 AZT라는 임상실험중인 약을 권한다. 제약회사의 돈 로비로 FDA의 승인을 받게 되는 이 약은 부작용으로 병세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 길을 찾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자료조사를 하던 중 멕시코, 일본 등 해외에서 활용되는 비타민 자연치료요법과 대체 약물에 눈뜨게 된다. 갖은 방법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미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은 약들을 구해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 공급하고, 스스로도 면역력을 강화시켜 증상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을 계속 강구한다.
젊은 여의사 이브 삭스(제니퍼 가너)는 AZT의 안전성을 의심하지만 나이든 남자의사 세바드(데니스 오헤어)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 장기적인 영향력은 알 수 없다”며 FDA의 권고를 따르는 것을 택한다. 론은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이라는 회원제 모임을 만들어 약물을 공급하다가 국세청의 감사로 팔던 약들을 압수당한다. 1987년에는 의사의 처방을 받은 개인만이 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FDA의 새 규정이 발효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로서의 입장, 의료진으로서는 정부로부터 보증 받은 약 처방과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내내 따라붙는다.
론 우드루프는 거대 제약사와 FDA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지만 기각당한다. 판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이기적인 FDA의 정책에 본 법정은 불쾌하다”면서도 “법도 상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시한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론이 주장한 저용량 AZT 사용과 복합약물요법이 널리 사용되면서 수백만명의 생명을 연장했다. 그 자신도 예상보다 훨씬 긴 7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았다.
한편 이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극중 론 우드루프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마초맨으로 그려진 것은 레이언과의 갈등과 융합, 론의 변화와 성장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가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와 달리 실제 론 우드루프는 게이와도 사귄 적이 있고, 바이섹슈얼이었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보도된 것이다. 하지만 ‘슬레이트’지는 작가 크레이그 보텐이 홍보대행인을 통해 “론 우드루프와 3일간의 인터뷰에서 그는 호모포비아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말들을 반복했다”며 그가 양성애자일리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