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보면서 길고 깊은 한숨을 여러 차례 내쉬었다. 이 참혹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먹먹하다’라는 표현으로 충분치 않은 어떤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어떡해서라도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급함이 생겼다. 그럼에도 고백하건대, 북한 인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곳에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정도의 추상적인 관념뿐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든 김진무(31)에게 묻고 싶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희망’이라는 홍보문구는 왜 붙은 것이냐고. 영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노라고. 김 감독은 “영화에 담긴 의도는 관객에게 가 닿으면 파편화 돼 흩어진다”라면서 말을 이었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만든 영화다.”
“질문을 던진다”라는 말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어떤 답을 내려주는 것 자체가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설명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를 보라”며 “‘엘리펀트’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상황만 보여준다.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는 관객에게 달려있다”고 권했다. ‘엘리펀트’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실제로 벌어진 고등학생의 총기 난사사건을 영화화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아무리 좋은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우리는 그다지 멀리 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던지면 비록 끝내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될 것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본 후 느낀 알 수 없는 조급함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김진무가 좋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리라.
‘신이 보낸 사람’은 참담한 북한 인권 상황을 다루면서도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김진무는 최대한 건조하게 이 주제에 접근했다.
“1년 간 북한 선교 단체, 북한 인권 단체, 탈북인, 새터민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했던 말은 책임의식을 가져달라는 것이었어요. 저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감상적인 방향으로 가져가거나 신파로 만드는 것은 북한 인권을 사람들을 울리기 위한 도구로 만드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관객의 직시였습니다.”
‘책임의식’이 바로 김 감독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다. 당신이 꼭 그런 책임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는가. 그는 “그게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를 줍니다. 영상을 통해 미학적 성취를 보여주기도 해요. 이게 영화의 전부가 아닙니다. 불편한 진실을 극화해서 보여주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죠. 지금 당장은 영화를 통해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딱 잘라 “아니다”고 답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라는 것이다. 뜻밖이다. “영화는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게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질문을 던지는 거죠.” ‘책임의식을 가지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 영화는 김진무에게 그런 것이다.
어떤 영화를 찍고 싶느냐고 물었다. 김진무스러운 대답이 왔다.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을 만든 이유는 ‘우리 세대는 절망스럽다. 그래서 죽고싶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안노 히데아키가 절망이라고 표현하는 세대에게 ‘살아라’라고 말해요. ‘신이 보낸 사람’은 안노 히데아키의 입장에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좀 더 성숙해지면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살아 볼만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