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제95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지난해보다 한층 강경해진 대일(對日) 메시지를 내놓았다. 특히 일본이 과거사를 계속해서 부정할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일본 정치권의 브레이크 없는 우경화 행보에 분명한 경고를 보낸 것이란 평가다.
또 일본 정부의 과거사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고노담화가 한·일관계의 초석이 됐음을 상기시키면서 전후 독일의 선례도 언급해 올바른 역사 인식이 양국간 관계 발전의 근간이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새로운 번영의 미래로 함께 나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올바르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특히, 한평생을 한맺힌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살아오신, 이제 쉰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고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는 양국간 역학관계와 외교적 예의를 감안해 표현 수위를 조절한 듯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이뤄질 때 공동번영의 미래도 함께 열어갈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제로 양국간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기념사에서는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는 데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지난 1년간 '무반성'으로 일관해 온 일본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가했다.
나아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할수록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며 “살아있는 진술과 증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정치적 이해만을 위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일본 정치권의 급격한 우경화 움직임을 꼬집었다.
“핵개발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만 초래할 것”이라던 대북(對北) 화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없이 우경화 행보로 일관한다면 국제사회에서‘왕따’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인 셈이다.
종군위안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일본 정부가 재검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을 겨냥해 아베 총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시대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관계를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평화헌법을 토대로 주변국들과 선린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는 내각의 결정으로 정해진 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고노 담화에 대해서는 '관방장관 담화'에 불과하다며 그 의미를 축소해 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한 나라의 역사인식은 그 나라가 나아갈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고,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지도자'란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베 총리에게 일침을 날린 것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인류 보편의 양심과 전후 독일 등의 선례에 따라 협력과 평화, 공영의 미래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과거의 부정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기대한다”며 일본 측이 과거사를 정확히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양국간 어떤 논의나 협의도 제대로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그동안 쌓아온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들의 우정과 신뢰를 정치가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도 문화를 통해 양국 국민들은 마음을 나누고 있다”면서 일본 정치 지도자들과 일반 국민을 구분한 접근법을 그대로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