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수기자]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 국정화가 박정희 군사정권이 유신독재 장기집권을 위해 치밀한 기획 아래 추진한 1974년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안민석 의원(경기오산)은 18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1973년 6월23일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교부의 국정화 방침 관련 문건을 상세히 공개했다.
안 의원은 “문건 분석 결과, 1974년 박정희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2014년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추진과정과 시점, 목적 등에서 소름이 끼치도록 흡사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박정희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었다면,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보수세력의 영구 장기집권을 위해 철저히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이 공개한 1973년 당시의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에 따르면, 문교부는 유신 정신을 반영한 국사 국정교과서를 발행하기 위해 사전작업, 방침발표, 발행까지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같은 해 6월9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국사교육 강화 방침”과 교과서 개편지시에 따라 문교부가 작성한 것으로, 국회 차원에서 전문이 상세히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건에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 현행 검정교과서 저자 및 발행업자의 반발 등 국정화에 따르는 문제점과 대책, 국정화 방침 발표를 위한 사전 작업과 발행까지의 구체적인 시행 일정 계획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문교부는 1973년 2월16일, 당시 11종 검정 교과서에 대하여 유신 정신 반영, 새마을·수출증대 교육재료 보강,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 변동된 교재 및 통계보완, 국사교육 강화 내용 등 5가지 내용으로 국사 교과서를 개편하라는 지시를 받고 1974년부터 국정 국사교과서를 발행하기 위해 4개월여의 준비 작업 끝에 이 문건을 작성, 보고했다.
문교부는 당시 11종의 발행자와 저자들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 정지작업을 벌였다. 3월16일에는 한국검인정교과서 대표이사가 11종의 발행자 저자들의 연서로 된 합의서를 첨부하여 단일본 발행을 건의토록 하고, 이를 문교부가 추진하는 방식으로 모양새를 갖췄다. 3월26일에는 단일본 발행 건의를 수리하고 발행자 전원 연서로 다짐장을 제출하도록 지시했고, 3일 후에는 11종 개별 발행 중지, 원고에 대한 본부 심사, 발행에 대한 본부 통제 등을 담은 다짐장을 받았다.
또한, 문건에 첨부된 시행 일정 계획에 따르면, 1973년 일정 시점으로 국정화 발표일(D-day)을 설정해놓고, 국정화 계획이 확정됨과 동시에 저자 및 발행자 설득(D-day 4일 전), 집필자 위촉, 3달간 집필. 국사편찬위 검토, 원고 수정, 윤문 감수, 교정 등의 절차를 걸쳐 이듬해인 1974년부터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처럼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통령의 지시와 문교부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됐고, 그 결과 1974년부터는 국정 국사교과서가 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 교과서에 따르면, 5·16 군사정변은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뜻있는 군인들이 일으킨 혁명”이고, 10월 유신은 “평화적 통일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로 어떠한 돌발 사태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체제”다. 5.16 군사정변이 쿠데타였지만, 윤보선 대통령과 육사생도의 지지를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안 의원에 따르면, 이처럼 유신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 추진했던 박정희 정권의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추진 과정과 절차, 추진 시점 등에 있어서 2014년 교육부가 업무보고를 통해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계획과 놀랄 만큼 흡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1972년 10월 유신독재 출범 1년 후인 1973년 문교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연초 업무계획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 정신의 고취와 한국적 민주주의의 확립 등을 기본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후인 2014년에 교육부도 대통령에게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한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는 명분 아래 국정화 계획을 보고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언급과 40년이 지난 후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거의 비슷한 점도 눈에 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개헌 직전인 1972년 3월 전국교육자대회 치사에서 “국가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올바른 국가관에 입각한 교육을 지향할 때가 왔다고 강조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올해 1월6일 개최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국가관을 갖게 하고 헌법정신에 기초한 공동체적 가치를 습득하도록 하는 것 이게 역사교육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안 의원은 “1974년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해 유신독재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추진한 것이었다면, 2014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보수세력의 영구 장기집권을 위해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인 국사 교과사의 국정화를 포기하고, 야당과 국민의 준엄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