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대통령선거가 치러진지 1년이 넘어 박근혜 정권 출범도 이제 2년차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게 겨우 1년이 지났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수많은 이슈들이 넘쳐났다. 인수위시절에는 인사파동 때문에, 취임 초기에는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 등으로 인해, 그리고 이 모든 이슈들을 관통해 지난 1년 내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논란으로 인해 박 대통령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가운데서도 대선 득표율을 상회하는 50%대 중반의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나름대로 선방을 잘 해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결국 불통 논란을 일으키게 됐고, 이로 인해 정치권 반대파들의 반발을 넘어서 국민적 저항까지 들끓게 했다. 이제 1년을 보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본질적 문제는 소통 부재에 있었다?
박근혜 정권을 향한 야당의 공격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야당이 가진 태생적 정치 포지션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의 반정부 투쟁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일반 여론의 움직임일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들이 정권에 대해 자신의 반감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분노가 속에서 곪고 곪아 터져 나왔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이는 곧 반정부 여론이 국민들 속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1년 내내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반정부 투쟁 여론을 유도했던 야권보다 국민 여론이 그만큼 더 중요한 이유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불거진 철도민영화와 의료민영화 의혹은 국민적 반정권 투쟁의 불씨를 댕기는 단초를 제공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결코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국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이명박 정권에서도 똑같은 민영화 추진 논란을 겪었던 터라, 이미 국민들은 학습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정부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하면서도 일방적인 입장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분개했다. 사전에 이러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결코 민영화가 아니니 이해를 구한다는 식의 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소통 없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에 민심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이고 의사협회가 반정부 투쟁을 펼치기 시작한 가운데 지난 10일에는 고려대학교 게시판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고대 경영학과 08학번이라고 밝힌 주현우(27) 씨가 올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단순한 ‘안녕하십니까’ 단순한 인사말이었지만 인사말 속에 담긴 의미는 잠자고 있던 대중의 분노를 깨워냈다.
주 씨는 대자보를 통해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이다”며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다”고 맹성토했다.
그러면서 주 씨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라며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이어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한다”며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냐?”고 자신들이 정치 무관심 세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꼬집었다.
또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이라며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현실참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주 씨는 “저는 다만 묻고 싶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라며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이라고 더 많은 젊은세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길 희망했다.
주 씨는 덧붙여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깊이 여운을 남기는 대자보를 작성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물음에 응답하는 정치권, “미안합니다”
대자보 글은 SNS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페이지는 개설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수십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는가 하면, 각 대학에서도 ‘안녕들 하십니까’에 응답하면서 바람에 바람을 덧대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중학생들까지도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동참했다.
대학에 나붙은 대자보 하나로 시작된 반정부 정서는 거꾸로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야권은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 다시 투쟁의 동력으로 삼고 나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권 소속 의원들은 무조건적인 정권 비판보다 자신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8층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여 “저 역시 안녕하지 못함을 고백한다”면서 “이 시대가 만든 성공의 잣대를 따라 개인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따져보는 물음 앞에 지금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해 받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그러면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저 역시 다시 뛰겠다”면서 “고맙다. 이 나라의 진짜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어 고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 따른 미안함을 전했다.
같은 당 유은혜 의원도 자신의 국회 의원사무실 옆 벽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아들딸들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여 “미안하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지금 나는 안녕하냐고 묻는 우리 자식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고작 이런 세상밖에 주지 못하는 것인지 가슴이 먹먹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신음과 절규가 터져 나오는 걸 돌이켜 보면 우리의 책임이 크다”며 “지난 1년 우리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했을까”라고 원 의원과 마찬가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유 의원은 거듭 자신 스스로도 안녕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너무 멀지 않은 때, 우리 함께 ‘안녕하시지요?’라고 인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여러분의 용기에 나도 다시 힘을 낸다”고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응답했다.
한편 한 대학생의 이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철도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는 투쟁의 현장에서, 의료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는 투쟁의 현장에서 끊임없는 울림이 되어 박근혜 정권을 향하고 있다. 이들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자각은 야권이 지난 1년 내내 제기해온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문제와 맞물리면서 국민적 반정부 정서 확산의 시너지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당선 1주년을 이제 갓 넘긴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